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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계 박인로 선생 위패를 모신 곳 영천 도계서원

by Yeongsik_Im 2025.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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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에 있는 도계서원은 조선 중기 무신이자 대표 가사문학가 노계 박인로(朴仁老) 선생을 배향하고 있는 서원으로 1707년(숙종 33)에 건립됐다. 원래는 서원산에 건립하였으나 1868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종가 옆에 사당을 지어 모셨다. 1972년 묘소 인근인 현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으며, 박인로 선생 의 문집을 인쇄한 목판각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8호  ‘박노계집판목(朴蘆溪集板木)’이 보관되어 있다.

도계서원 앞에는 노계 박인로 선생의  문학정신과 성경충효 사상을 배워 볼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2018년 6월 개관한 노계문학관이 위치하고 있다.

 

박인로의 자는 덕옹(德翁), 호 노계(蘆溪)·무하옹(無何翁)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참가하여 무공을 세웠으며 이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조라 포수군 만호 등으로 일하였다. 또한 글재주가 뛰어나 「태평사(太平詞)」, 「선상탄(船上嘆)」, 「사제곡(莎堤曲)」, 「누항사(陋巷詞)」, 「독락당(獨樂堂)」, 「영남가(嶺南歌)」 등의 가사를 지었으며,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3년씩 시묘살이를 하는 등 효심이 지극하였다. 관직을 그만둔 뒤에는 낙향하여 독서와 시작(詩作)에 전념하였다. 1561년(명종 16) 6월 26일에 태어나 1642년(인조 20) 12월 6일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노계시비

盤中 早紅감이 고아도 보이나다 
柚子안이라도 품음즉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노라

 

노계시비 뒷면에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친숙한 조홍시가(早紅枾歌) 가 새겨져 있다. 1601년 41세 노계가 한음 이덕형이 내 놓은 홍시를 보고 지은 시조다.

노계가비
도계서원

도계 서원은 전면에 강학공간인 강당이 있고 후면에 제향공간인 사당이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 형식을 가지고 있다. 건축물로는 사당인 입덕묘와 강당이 있고 대문채가 있다.

도계서원 대문채
도계서원 입덕묘

사당인 입덕묘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로 사당으로는 드물게 팔작지붕 건물이다. 강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로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가운데 마루를 두고 양옆에 온돌방을 둔 평면 형식이다.

도계서원 구인당
도계서원 편액

도계서원의 강학공간으로 사용된 강당인 구인당에는 중앙에 道溪書院 (도계서원) 편액이 걸려있고 중앙 마루 인쪽에 九仞堂 (구인당) 현판이 거렬 있다. 양 옆의 온돌방에는 좌측으로 思珹齋 (사성재) 우측에는 主敬齋 (주경재) 현판이 걸려있다.

도게서원에는 박인로 선생의 문집을 인쇄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8호로 지정된 ‘노계집(蘆溪集)’ 판목이 보관되어 있었다.
조선 중기 대표적 문인인 노계 박인로(1561~1642) 선생은 가사 9편, 시조 67수, 한시 110수를 남겼다.

박노계집판목 안내문
노계문학관
원두평저수지

 

 

조선 3대 시인 노계 박인로 · 영천 노계문학관

경북 영천시 북안면 신평탑골길 93-33 (도천리 296) 에 위치하고 있는 노계문학관은 송강정철, 고산윤선도와 함께 조선3대 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노계 박인로 선생의 문학정신과 성경충효 사상

hyanggyo.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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