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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로 지정된 서당 옥천 이지당(二止堂)

by Yeongsik_Im 2021.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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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당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이백리 옥각길을 지나다보니 유유히 흐르는 서화천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양쪽이 누각이 있는 멋진 목조기와집 한채가 보인다. 바로 이 곳이 지난해 12월 보물 제2107호로 지정된 이지당(二止堂호)이다. 이지당은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 도산서원 농운정사와 서당으로는 최초로 국가 보물로 등재됐다.

이지당으로 가는 길

금강의 지류인 서화천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면 우측에 작은 주차장이 있고 고목이 우거진 숲속 아래 데크로드를 조금만 걸으면 이지당이 나온다,

이지당은 조헌(1544-1592)선생이 지방의 영재를 모아 학문을 논의하던 서당이다. 각신마을 앞에 있어서 각신서당이라고 했으나, 뒤에 송시열(1607-1689)이 시전(詩傳)의 “산이 높으면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고,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高山仰止 景行行止)” 라는 문구를 빌려 이지당이라 하였다. 그 후 광무 5년(1901)에 인근의 금학 • 이찰 • 조함 • 안씨의 4문중 에서 정면 7칸,측면 1칸의 팔작지붕집으로 새로 지었다. ‘이지당기(二止常紀)와 '이지당 강학조약(二此堂講學條約)이란 편액이 대청에 걸려 있다. 조헌은 호가 중봉, 본관은 배천(白川)이다. 명종 22년(1567)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외직을 지냈으며,임진왜란 때 옥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청주를 되찾고 금산전투에 참여하여 700여명의 의병과함께 목숨을 잃었다. 영의정의 벼슬을 받았고, 시호는 문열(文烈)이다.

이지당은 정면에서 보면 6칸, 측면은 1칸으로 돼 있다. 몸체는 서쪽부터 2칸, 대청마루는 3칸, 그리고 1칸의 방이 있다. 그 양쪽에는 익랑(건축물의 좌우 면에 이어 만든 부속 건물)이다. 특히 서쪽 익랑은 2층 누각으로 꾸며져 있는데 서당의 형식을 넘어서는 옛 조상들의 건축관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지당이라는 이름은 우암 송시열 선생(1607~1689)이 붙였고 직접 쓴 글씨이다.원본은 도난 방지를 위해 1992년부터 옥천 향토전시관에 보관돼 있다.현재 걸려있는 현판은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28호 각자장 보유자인 박영덕씨가 모각한 것이다.
각신서당

옥천군 관계자는 “마을 주민들의 관리로 일제시대와 6·25를 거쳐서도 이지당이 온전히 남아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며 “주민들의 뜻을 받들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재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내년부터 이지당 주변에 편의시설 등을 갖춰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옥천 군북면 추소리 앞 호숫가에 병풍처럼 펼쳐진 절경이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거 같다하여 우암 송시열 선생이 소금강이라 이름 지어 노래했다고 전해지는 곳, 대청호에 떠 있는 병풍바위 ‘부소담악’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옥천읍내에서 저녁 약속이 있어 가까운 정지용생가로 향했다.

 

부소담악은 2008년 국토해양부가 한국을 대표할 만한 아름다운 하천 100곳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고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는 출사지로도 유명하다. 옥천은 역사문화 인물도 많고 꼭 가봐야 할 곳도 많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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