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조사비
포항시 북구 송라면 조사리 314
원각조사는 고려 우왕 5년(1379)에 이 마을(청하면 조사리)에서 태어났다. 12세 되던 해에 부친상을 입고는 입을 다물고 마을 뒤 언덕에 있는 숲속에 들어가 명상에 잠긴 뒤 3년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앞 동해 바다 위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장하고 기특하도다. 태양의 광명이여!”하고 외치면서 깨달음을 얻어 일어났다.
몇년 뒤 모친마저 세상을 떠나자, 부귀영화에 뜻이 없어 부친이 유언으로까지 남겼던 과거의 길을 포기하고, 가까운 보경사(寶鏡寺)와 성도암(成道庵)에 가서 스님들과 불법을 토론하고 생의 참다운 의미를 깨닫는 데 진력하였다.
그러던 조사는 차차 일기와 농사의 풍흥을 예측하는가 하면, 130년 후에 임진왜란이 난다는 것까지 예언하니, 사람들이 이인(異人) 또는 성인(聖人)이라 불렀다. 출가수도한 일이 없으면서도 불법에 통달했으므로,그가 임종하자, 불자들이 불교의식으로 화장하고 사리를 상태사(常泰寺)에 봉안하였으며, 원각조사라는 칭호를 부여하게 되었다.
도로변에 세워져 있는 원각조사비 안내판을 보고 길 건너 원각조사비각으로 가보니 잡초만 무성하다. 관리가 전혀 안되고 있는 듯 하다.
원각조사의 속성은 김씨이며 아버지는 김백광 어머니는 정덕이다. 고려 우왕 5년(1379) 2월 15일 청하현 조사리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여섯 살에 사서를 통달하였고 아홉 살에 시경 열 살에 서경, 열한 살에 주역을 읽어 시문은 물론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게 되었다. 집에서 가까운 보경사와 성도암에 가서 고승과 불법을 문답하고 불경을 보고 참다운 생의 진리를 깨달았고 일기와 농사일에 대한 풍흉을 계측하기도 하고 약 13()년 후에 왜군이 나라를 침범한다는 일을 에언하니 사람들이 이인 또는 성인이라 하였다. 사후에 불교의식에 의해 화장하고 사리 수십과를 거두어 상태사에 부도를 세웠다한다.
현재의 비는 원래 성도암(成道庭)에 세워져 있었던 것이지만 폐사 후 매몰되었다가 일제강점기에 발견되었다. 귀부와 비신으로 구성되었으며 비신의 끝은 모죽임하였다. 비신의 크기는 전면폭 60cm, 높이 50cm,두께 18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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