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안동헌과 용안향교로 가는 길 비가 많이 내려 잠시 편의점에서 차 한잔 마시며 쉬어 간다. 이정표를 보니 용안교동길이다. 교동은 향교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대부분 향교가 있는 지역의 동네 이름은 교동이다.
용안은 익산지역에서 금마, 여산, 함열과 함께 읍치의 중심지였다. 지금 익산시 용안면, 용동면을 포함하는 소구모 군현이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용안읍성은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4천 2백 40척이고. 높이가 11척이며, 안에 샘 11개, 작은 연못 한 개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용안동헌은 옛 용안읍성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다. 서쪽에는 면사무소가 자리잡고 있고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용안향교와 연결된다.
용안에는 동헌과 객사, 향교 등 여러 중요한 건물들이 있었으나 향교를 제외하고 일제강점기에 모두 멸실되었다가 현재의 동헌은 1988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현존하는 동헌은 매우 드물고 고증을 통해 복원된 것이 대부분이다.
용안동헌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이다. 기단은 자연석을 사용하였고 정면은 원형 초석을 놓고 원기둥을 세웠으며 나머지 삼면은 방형 초석을 놓고 사각기둥을 사용하였다. 공포는 쇠서를 안쪽으로 비스듬하게 잘라낸 물익공으로 사면 모로 소로를 끼워 수장하였다.
오른쪽 끝에는 방을 드렸고 중앙 3칸과 서쪽 반칸은 모두 마루를 깔아 대청으로 구성하였다. 가구구조는 5량 형식으로 대블보 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보를 받게 하고 종보위에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는 구조이다.
동헌은 고을의 수령 등이 정무를 집행하는 곳으로 지방관의 생활 처소인 내아와 구분되어 보통 그 동편에 위치했기 때문에 동헌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내아는 수령과 가족이 살았던 살림집이다.
동헌 앞에는 넓은 마당이 조성되어 있고 마당의 양쪽에는 25기의 비석들이 세워져 있다. 이 비석들은 본래 지서 앞 사거리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6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동헌 앞 마당에는 방문객의 관아체험을 위해 설치된 시설물이 있는데 곤장, 주리,가 가 설치되어 있다.
곤장은 중죄를 행한 죄인에게 태형을 가할 때 쓰는 도구이고, 주리는 주뢰가 변한 말로 '전도주뢰'라고도 하는데 1732년(영조 8년)형행이 지나치다 하여 금지령을 내렸으나 계속 사용되었다고 한다.
주리형에는 가위주리와 줄주리, 팔주리형이 있는데 가위주리는 두 무릅과 파을 묶은 후 두개의 나무 막대를 정강이 사이에 끼워 양끝을 엇갈리게 틀면서 휘게 하는 형벌로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벌이다.
가는 죄인의 목에 씌우는 나무로 만든 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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