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안향교와 용안동헌 등 용안면 지역을 돌아보며 용안면은 삼세오충열사와 용안향교가 있어 충효의 고장이는 소개를 하고 있어 삼세오충열유적(三世五忠烈遺蹟)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삼세오충열사는 용안읍내에서 강경쪽으로 가는 현내로를 따라 5분정도 가다 보면 도로 우측에 위치하고 있다.
삼세오충열사는 3대에 걸쳐 나라를 위해 순절한 해주오씨(海州吳氏) 오충신(五忠臣)의 유적이 모여 있는 곳이다. 원래는 오응정(吳應鼎)과 그의 아들 욱(稶)과 직(稷), 그리고 직의 아들 방언(邦彦)을 배향하여 사충사(四忠祠)라 하였으나 근년에 오응정의 아들 동량(東亮)을 추향하여 오충열사(五忠烈祠)라 부르고 있다.
오응정(1548∼1597)은 전라도 용안현 출신으로 자는 문중(文中), 호는 완월당(翫月堂)이다. 조선 선조 7년(1574년)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에서 치적(治積)을 쌓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순천부사 겸 총 병부 문안사(順天府使兼總兵府問安使) 전라도 우방어사(全羅道右防禦使)가 되어 어모장군(禦侮將軍) 욱, 동량과 더불어 남원성(南原城) 전투에 참전하여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게 되자 화약더미 속에서 세 부자가 장렬하게 순절하였다.
오응정의 차남 오직(1574∼1619)은 광해군 때 도원수(都元帥) 강홍립(康弘立) 막하의 우영천총(右營千摠)으로 요동심하 전투에 출전하였으나 강홍립이 후금군에 항복하자 격분하여 부차(富車)에서 적과 싸우다 온 몸에 화살을 맞고 전사하였다.
그의 아들 방언(1588∼1637)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적과 싸우다 인조대에 삼전도 굴욕을 당하자 남한강에 투신자살하였다. 이를 기리기 위해 조선 숙종 7년(1681)에 충열사를 세웠다.
삼세오충열사와 기념관인 영국관은 외삼문이 닫혀 있는 관계로 관람을 할 수 없었다. 개방에 대한 안내도 확인할 수 없었다.
내삼문인 장의문을 지나면 본사우인 삼세오충열사가 있고 여기에는 중앙에 오응정, 좌측에 동량과 욱, 우측에 직과 방언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삼세오충열사의 현판은 여산 권갑석 선생이 쓰셨다.
현재의 삼세오충열사는 1978년 용안의 유림들이 발의하고 1981년 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지 2만 9800㎡(9,000평)에 오충렬사를 건립하였고 1982년 묘역이 확장되면서 기념비와 기념관이 건립되었으며 사당과 내삼문, 외삼문 등이 차례로 건립되었다.
충신문의 우측으로 가면 오충신의 묘와 오응운, 오응태, 오하몽, 오석근, 오식 등 직계선조의 묘가 있고 오영우, 오사고, 오희, 오사만, 오영수 등을 모신 삼신단이 있다.
9,00여평의 넓은 면적에 조성되어 있는 삼세 오충열 유적을 돌아보며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문화재 활용과 관리에 있어서 좀 아쉬운 부분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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