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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향교와 서원/충청남도

오천향교 - 한국의 향교 충청남도 보령

by Yeongsik_Im 2022.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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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향교에 이어 보령시 오천면 교성리에 위치한 오천향교로 향한다. 현재 행정구역상 보령시 향역에는 보령향교남포향교, 오천향교가 남아 있다.

누렇게 물든 황금 들녘을 바라보며 오천중앙로에서 교성리로 들어가는 소로를 따라 1km정도 들어가면 마을 뒷산 기슭에 오천향교가 자리하고 있다. 교성리는 본래 오천군 천동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웅포동 호접동 김신리 태현리 내웅리 금암리 일부와 보령군 장척면 오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교성리라 해서 보령군 오천면에 편입됐다.

오천향교 유래비

교성리 마을입구에는 오천향교 유래비가 세워져 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곳은 원래 수군절도사영의 지방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향교가 없었다. 불행히도 을미년(1895년)에 수군절도사영이 폐지되었지만 그 후 6년이 지난 신축년 (1901년)에 천운(天運)이 돌아왔다. 이는 천운이 갔다가 돌아오지 않음이 없게 된 것이었으니 묘당(廟堂)에서 특별히 계몽을 위하여 오천군(鰲川郡)을 신설함이었다. 을사년(1905년)에 이르러 유림들이 여러 번의 의논와 뜻을 모아 각자 뜻을 내어 향교를 세워 선성(先聖)을 숭상하고 후학(後學)을 밝히니 어찌 성(盛)하고 아름답지 않으리오. 대저 이미 지난 천만세를 말미암건대 마믐으로 생각한 바에 어긋나지 아니하고 오는 천만세에 이르러도 마음으로 보는 바에 어긋나지 아니하리라. 우리들이 감이 충의(衷義)를 내어 영원히 잊지 않을 뜻으로 청금록(青衿錄)의 서문으로 기록하노라.

오천향교

1901년에 오천군이 생기면서 유림과 군수가 힘을 합하여 1905년에 대성전 건물이 완성된 오천향교는 대한제국시대에 세워진 마지막 향교이다.

안내문에는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향교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1994년에 건립된 동해향교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최근에 건립된 향교이다.

오천향교 정문 삼문이 아닌 평대문이다.

오천향교는 정문과 대성전(大成殿) 그리고 대성전 바로 우측에 동무(東廡)가 있고 동무 뒤편에 강륜당(講倫堂)이 있어 좌묘후학(左廟右學)의 보기 드문 배치형태를 가지고 있다.

오천향교의 명륜당격인 강륜당은 1992년 보령시에서 건립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인 강륜당 뒷면과 측면 모습
담넘어로 보이는 동무와 대성전,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37호로 지정됐다.

오천향교는 건립당시 오천군 초임군수 이명하(李明夏)가 부지(敷地)를 마련하고, 후임군수 이승갑(李昇甲)이 사재(私財)와 종재(宗財)를 모아 대성전 1동 건립에 그쳤다고 한다. 그 후 유림들이 뜻을 모아 헌관청(獻官廳)과 사주문(四柱門)만 건립하여 향교건물로 사용해 왔다.

동무 헌관청

오천향교는 비록 작은 향교지만 지역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유림들이 뜻을 모아 건립한 의미있는 향교였다. 유래비의 글귀를 다시 한번 더 새겨본다.

 

"향교를 세워 선성(先聖)을 숭상하고 후학(後學)을 밝히니 어찌 盛)하고 아름답지 않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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