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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26

지리산 천왕봉을 품은 산청 남명조식유적지 산천재 서북쪽으로 높이 치솟은 지리산 천왕봉, 그곳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중산과 삼장으로 나누어 흐르다가 양당에서 다시 만나 덕산(德山〉을 이룬다. 덕산에 위치하여 지리산 천왕봉을 품고 있는 산천제는 남명(南冥) 조식(曹植)1501〜1572)선생이 61세 때부터 돌아가실 때 까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던 곳이다. 산천재 (山天齋)의 산천(山天)이란 주역 대축괘(大畜卦)의 괘상으로, “굳세고 독실한 마음으로 공부하여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한다.” 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산천재의 주련에는 德山卜居)(덕산에 터를 잡고)가 걸려 있다. 春山底處無芳草 봄산 어느 곳인들 향기로운 풀 없으랴마는 只愛天王近帝居 천제 사는 곳과 가까운 천왕봉이 좋아서 왔네 白手歸來何物食 맨손으로 돌아와 무얼 먹고 살까 하지만 銀河十里.. 2022. 9. 23.
포항 장기읍성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386호 포항시 장기면 읍내리, 동악산 동쪽 자락에 자리한 장기읍성은 일제강점기 당시 읍성 내의 모든 관아 건물들이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되고 단지 향교만이 주민들에 의해 복원 유지되고 있었고, 잡초에 묻힌 성벽은 허물어진 곳이 대부분이었으나 포항시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5년동안 134억원을 들여 성문과 건물터를 원형대로 복원하고 주차장을 설치하는 등 문화유적지 조성사업을 실시했다. 장기읍성은 「고려사」,「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 현종 2년(1011) 토성으로 쌓았으나,조선 세종 21년(1439) 석성으로 재축한 후 군사기지 등으로 이용되었다. 성곽 전체 길이는 1,440m이고 3개의 성문과 옹성, 치성을 갖추고 있다. 장기읍성는 산꼭대기에 있으면서 읍을 다스리는 기능도 갖추고 있는 장기.. 2022. 8. 31.
충남 예산 윤봉길의사 유적 · 윤봉길의사 기념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덕산온천로에 위치하고 있는 윤봉길의사 유적 내에는 기념관을 비롯해 어록탑, 동상, 사적비, 기념탑 등과 충의사, 광현당(생가), 저한당(성장가), 농촌부흥운동을 한 부흥원이 자리하고 있다. '매헌윤봉길의사사적지'였으나 2011년 7월 8일 고시에 의해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1968년 창건하였고 1972년 사적 제229호로 지정 받았으며 윤봉길의 유품 28종 56점이 보물 제568호로 지정되었다. 1974년에는 유물전시관을 건립하였고 1978년 충의문, 홍문 등을 세웠으며 충의사 건물을 중건하였다. 1984년 충의관 및 사적비, 2000년 윤봉길의사 어록탑, 2001년 윤봉길의사 기념관을 건립하였다.​관람시간은 하절기 09:00 ~ 18:00, 동절기 0.. 2022. 8. 29.
익산 입점리고분 · 입점리고분전시관 고분은 역사적,고고학적 자료가 될 수 있는 옛날 사람들의 무덤을 말한다. 익산 입점리 고분은 1986년 봄, 한 고등학생이 칡을 캐다가 금동제 모자 등을 발견하고 신고하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발굴을 진행하여 굴식돌방무덤 5기와 돌덧널무덤 3기를 조사하였다. 또한 1998년에는 돌널무덤 13기가 추가로 조사되었다.​1986년 발굴된 굴식돌방무덤(1호분) 출토 금동제 모자,신발,철제 발걸이 등의 유물을 볼 때 이 고분은 5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유물 중 금동제 모자는 일본 구마모토현에 있는 후나야마 고분 등에서 나온 것과 비슷하여 당시 백제와 일본의 문화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6월 7일 보슬비를 맞으며 사적 제347호 익산 입점리고분을 돌아보았다.익산 입점리고분전시관은 1월.. 2022. 6. 8.
경주 미추왕릉 경주 미추왕릉 Tomb of King Michu, Gyeongju 사적 제175호 Historic Site No.175 미추왕릉(味鄒王陵)은 경북 경주시 황남동 경주분지 한가운데인 대릉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대릉원에는 천마총, 황남 대총, 미추왕릉(味鄒王陵) 따위의 고분 20기(基)가 있다. 사적 제512호로 사적 정식 명칭은 ‘경주 대릉원 일원’이다. 이 능은 선라 제13대 마추왕(262-284)을 모신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마추왕은 경주 김씨의 시조 김알지의 후예로 제12대 첨해왕이 아들 없이 죽자 감씨 가운데 처음으로 왕위에 올 랐다. 여러 차례 백제의 공격을 막아 내었고, 백성들에게 농업올 장려하였다. 다음왕인 유례왕때, 청도의 이서국(고대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 있었던 초기 국가)이 금성을공격해.. 2021. 12. 1.
김유신장군의 삼국통일 전초기지 경산 병영유적(압량유적) 사적 제218호인 경산 병영유적은 경상북도 경산시 압량면 압량리 179번지, 압량면 내리 389번지, 진량읍 선화리 948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김유신 장군이 압량주(押染州) 군주로 있을 당시 백제를 공략하고 나아가 삼국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전초기지이자 군사를 모아 심신을 연마하고 무술을 훈련을 시키던 군사훈련장 이었다는 구전이 전하고 있는 3곳의 토성모양 축조물을 합하여 압량유적이라 한다. 이들은 각각 경산시 압량면 압량리와 내리,그리고 진량읍 선화리에 위치하는데,서로 1.2〜3.2 k m 떨어져 삼각형의 배치상을 보이고 있다. 압량유적은 금호강 이남의 넓은 압량벌 중심지대에 입지하고 있는데,각각 압량벌을 조망할 수 있는 야트막한 구릉 선단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압량리유적은 얕은 구릉위에.. 2021. 8. 18.
왜구와 싸워 대승을 거둔 곳 남원 황산대첩비지 남원 황산대첩비지 이 곳은 고려 말 이성계가 왜구와 싸워 대승을 거둔 전적지이다. 금강어귀에서 퇴로가 막힌 왜구는 이곳에 주둔하면서 장차 바다로 달아나려 하였다. 고려군의 최고지휘관 이성계는 적장 아지발도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성계가 먼저 활을 쏘아 아지발도의 투구를 떨어트리고. 뒤이어 이두란이 쏜 화살이 그의 머리를 맞혔디. 이에 힘입어 고려군은 지휘자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왜구를 섬멸하였다. 선조 때 왕명을 받아 김귀영의 글,송인의 글씨로 대첩비를 세웠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부수었다. 광복 후 옛 비석을 복구하였다가,1972년 신석호가 한글로 글을 지어 새롭게 세웠다. 우리 선조들이 왜구의 침탈에 맞서 꿋꿋하게 일구어낸 역사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남원 황산대첩비지 삼문을 들어서면 중앙.. 2021. 8. 11.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 705번국도에서 개암사로 가는 길인 736번도로로 들어서면 우측에 구암리 지석묘군 안내표지판이 보이고 300여미터정도 들어가면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이 있다. 7월 25일 찾은 구암리 지석묘군에는 활작 피어 있는 배롱나무가 찾는 이들을 반겨주고 있다. ​ 주차장과 화장실 등이 잘 갖추어져 있고 부안군에서 지속작으로 주변의 환경정비를 실시하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고 문화유적지가 잘 보호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 ​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 扶安 龜岩理 支石墓群 사적 제 103호 Dolmens in Guam-ri, Buan Historic site no. 103 ​ 돌로 만든 무덤으로 주로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 진 지석묘에는 탁자 모양인 북방식과 바둑판 모양인 남방식이 있다. 부안 구암리에.. 2021. 7. 27.
김제 옛 관아 동헌과 내아 김제 옛 관아(동헌과 내아) ​ 김제시 중심 교동에 위치한 김제 관아는 인근에 있는 김제향교와 함께 사적 제482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헌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0호, 내아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1호이다. 김제시 중심에서 볼때 서쪽 성산 기슭에 향교가 자리잡고 있고 향교 앞 150여미터거리 좌측에 관아가 위치해 있다. 김제 옛 관아는 조선시대 지방행정의 치소(治所)로서 도시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동현과 내아가 함께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매우 드문 사례이다.현재 김제관아는 동헌과 내아, 피금각이 남아있으며 비교적 온전한 모습으로 전해지고 있어 당대의 지방행정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실례가 되고 있다. ​ 김제군 수령의 공무집행 공간이었던 동헌의 경우 1667년(현종 8년) 김제 군수 민도가 처.. 2021. 7. 4.
남원 만인의총 남원 만인의총 사적 제272호 만인의총은 정유재란(1597년)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민·관·군 1만여 의사들의 호국의 얼이 서려있는 성스러운 곳이다. ​ 임진왜란의 패인이 전라도 지방을 점령하지 못한 탓이라고 여긴 왜군은 정유재란을 일으켜 전라도 지방을 점령한 뒤 북진할 전략을 세웠다. 이에 따라 왜군은 1597년(선조 30) 7월 말 11만 명을 좌군과 우군으로 나누어 우군은 황석산성(黃石山城)으로, 좌군은 남원으로 진격하였다. ​ 조정에서는 남원성을 사수하기 위하여 전라병마사 이복남 장군이 이끄는 1천여의 군사와 명나라 부총병 양원의 3천병사로 하여금 남원성을 지키게 하였다. 적은 8월 12일 남원에 당도하여 성을 겹겹이 포위하였으며, 13일부터 16일 밤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 2021. 7. 3.
신라의 보물 만파식적을 얻은 곳 경주 이견대 利見臺 신라의 보물 만파식적을 얻은 곳 경주 이견대 利見臺 ​ 포항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울산으로 향하던 중 왼쪽으로 누각이 보이고 트럼펫 연주 소리가 들려 온다. 차를 세우고 내려가 보니 바로 이곳이 이견대(利見臺)였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곳이니 목적지로 설정하고 것이 좋다. 들어가는 길도 좁고 불편하지만 주차장도 있다. 이견대에서 동해바다 문무대왕릉을 바라보며 멋지게 트럼펫을 연주하고 계시는 분이 있어 허락을 맞고 급히 폰으로 촬영했다. 이견대는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경주 문무대왕릉,사적 제158호)이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신문왕이 감포 앞바다에 있는 문무왕의 해중 능묘(海中陵墓)를 망배(望拜)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 문무왕이 왜구를 진압하고자 감은사를 세웠으나 .. 2021.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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