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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전주/전주향교

전주향교 비석 이야기

by Yeongsik_Im 2024.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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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향교의 비석(碑石) 이야기는 하마비부터 소개하고 이어서 전주향교위성안창립기사비, 문묘중건사적비, 전주향교존성회연혁비, 전주향교중수공적비, 전주존성회기사비를 소개한다.

 

전주향교 하마비는 홍살문 우측에 세워져 있는데  전라북도에서는 가장 오래된 하마비로 알려져 있다. 두번째로 오래된 하마비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22호로 지정된 전주 경기전의 하마비이다. 하마비가 문화재로 지정된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로 전주 경기전하마비와 완도 읍리 하마비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전주향교 홍살문과 하마비

전주향교 하마비는 여느 하마비와는 다르게 돌기둥 모양으로 지금까지 전국의 향교에서 보았던 하마비 중에 제일 크다고 볼 수 있다. 전주향교 하마비는 높이 약 235cm, 넓이 62~49cm, 측면 39~29cm 이다.

전주향교 하마비에는 과차자개하마(過此者皆下馬)라고 새겨져 있다. 이 곳을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나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전주향교의 하마비는 전라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하마비이나 전주천 공사 중 일부가 파손된 채 발견되어 복원한 것이다. 하마비의 '皆'자는 마모가 심한 편이지만 알아 볼 수는 있는 정도이다.

전주향교 하마비 뒷면과 옆면

하마비의 '皆(다 개)'자는 마모가 심한 편이지만 문백상으로 알아 볼 수는 있는 정도이다.

下馬나 下馬碑라고 단순하게 새겨진 하마비도 있지만 대부분 과차자개하마(過此者皆下馬) 또는 대소인원 개하마(大小人員 皆下馬)라고 새겨진 하마비가 많은 편이다.

전주향교의 만화루 옆에는 전주향교 표지석과 함께 5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전주향교의 역사에 비해 그리 많은 비석이 세워져 있지는 않다. 대부분 향교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紀事碑(기사비)이다.

 

좌측부터  全州鄕校衛聖案剏立紀事碑(전주향교위성안창립기사비), 文廟重建事蹟碑(문묘중건사적비), 全州鄕校尊聖會沿革碑(전주향교존성회연혁비), 全州鄕校重修功績碑(전주향교중수공적비), 全州尊聖會紀事碑(전주존성회기사비) 이다.

전주향교 비석
전주향교 표지석
全州鄕校衛聖案剏立紀事碑(전주향교위성안창립기사비)

孔夫子誕生 二千五百六年 乙未秋 八月下澣 이라고 새겨져 있는 것이 공부자 탄생 2506년 (1955년) 을미년 팔월하순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光山金文鈺撰 瑞興金奎泰篆 礪山宋成鏞書(광산김문옥찬 서흥김규태전 여산송성용서) 

 

我邦之有學宮自麗代始其釋奠於先聖先師自有學宮始今殆近千禩矣邦人無貴賤咸知尊護之如其私然此無他故以聖人者同萬世之師從夫子而餟食聖廡者亦皆日星終古有繼徃開來之功夫道無古今人無內外何先何後何彼何此故苟其道可尊人可師者廟祠以隮之籩豆以薦之香幣尸祝以奉之非苟然而己人之類一日未殄卽此禮亦不可以一日廢廼自東祲西氛朝暮迭蔽而吾聖賢之道大晦學宮春草祭田沒亦己久往己丑夏自成均館倡爲外賢不必祀之議遽敢黜埋十存其一二蓋將幷與先聖而廢之特不忍且爲之漸爾列邑諸校從而靡然全州士人李道衡聞之奮曰徃年廢丁祀誔固己援儒而同於耶佛矣今以外人而黜之則是又耶佛之徒之不如也吾平日讀聖賢書受其岡極之恩今何愛爲聖賢死卽手一刄腰一棒裂眦怒且罵立殿門拒之有敢犯者剌焉血淋漓被土會者驚散庚寅春瞰道衡出復謨有暴道衡疾馳入堅拒如前父顧齋炳殷年且八十力疾詣庠以杖擊其魁彼挾巡吏縛道
衡幷逮其父因化兩廡諸牌凡二百有餘自是堂廡爲市氓所居而殿庭且擊毬馳馬矣嗣而大亂作域內震盪伏屍流血至數百萬戰禍之慘爲千古所未有而全州之聖廟至空無一卓蓋天下未有不兆於始者兆於此應於彼其理焉可誣矣亂稍定道衡遍行草間覓牌權奉明倫堂己又還安于殿因行釋奠以殿廡之壤敗而煤褻者不可以不新主牌之灰燼而缺亡者不可以不復庖湢之具墻垣之治事難一二擧明年春遂結同志爲契名曰衛聖案初得百餘人旣而願學之士慕古之倫爭入案恐後衆至六七百醵金殖貲爲葺屋供牲之需凡五寒暑而得復舊儀於是殿宇翼翼堂廡嚴嚴聖哲群賢咸秩在位春秋將事襟紳駿奔濟蹌殊不覺其曾經刼火埋沒以荒烟穢草之中而肅若有神鬼護而日月鑒之者甚盛擧也昔明祖欲射孟子錢唐袒而受箭君子許其勇於衛聖然職在講官以死爭其君固也若道衡一儒士耳生平足未涉校非有有司之責鄕人之議而獨能忘其身以赴聖賢之難不尤壯哉余又因此知天理之在
人未嘗以亂代汚俗而亡方世之惑於異敎塞我正路趨乎彼則揚揚一時入乎此則沉沉終身乃能奮於瘡痍之餘一唱百和擧墬廢而復之是七百人之心亦道衡之志也彼其侮賢害道而必欲殄絶之者抑獨何哉案中人士相與治一大石欲來者悉其事且有以繼之也屬文鈺志略又爲之銘銘曰吾嘗聞彼橫議非吾邦者去之夫子豈非魯人天下以爲吾師且若以吾邦而獨尊爲吾邦者獨何學歟絶其源而望流斷其本而求枝其爲此者不仁乎乃衆何爲而俱靡懍堅氷之將至早己辨於履霜嗟哉繼之以何物祇有破存以爲亡迄千禩而明禋忍一朝而埋荒有一士兮侃侃奮隻手而障瀾多士翕其輸誠我輩獨非衣冠合涓流而成海積衆簣而爲山廟貌爀其丹雘籩豆秋其靜嘉詎但風于一州實邦國之光華幸是案之益張講吾道於昏冥蔚四方其聞風庶以牖夫太平乙巳仲秋光山金文鈺撰【金奎泰篆宋成鏞書】 全州鄕校衛聖案創立紀事碑

文廟重建事蹟碑(문묘중건사적비)

孔夫子誕降 二千五百二十五 年甲寅 四月初吉 이라 새겨져 있다. 공부자 탄생 2525년 (1974년) 갑인년 사월 초하룻날 세운 것으로 全義李道衡謹述 礪山宋成鏞 書並 篆(전의이도형근술 여산송성용서병전)  당시 전주향교 2대 전교이신 이도형이 짓고 비석의 글씨는 여산 송성용 선생이 썼다. 

이도형 전주향교 제2대 전교 (1953. 5, 1 ~ 1955, 3, 1)

이도형(1909~1974) 전교는 위패민안 반대의 전면에서  공자의 도를 지키려는 유림계의 모임을 결성하고 1952년 「전주위성계안」을 간행했다. 또한 유교의 관점에서 전주의 역사, 지리, 유학 등의 내용을 다룬 「완산지」 (1958)를 간행하고 전국적으로 산재한 간재 전우의 문인록을 정리하여 「화도연원록」(1961)을 편찬하였다. 

全州鄕校尊聖會沿革碑(전주향교존성회연혁비)

전주향교 존성회는 공부자(孔夫子)의 교리(敎理)와 역대 선현들의 학덕(學德)을 높이 받들어 강학수신(講學修身)하여 유학의 정통성을 계승함과 동시에 전주향교를 협찬보익(協贊 輔翊)하여 문묘건봉(文廟虔奉)과 향교 제반사업을 지원하고 존성모현(尊聖慕賢)에 지성을 다하기 위하여 유학에  관심이 많은 자로 구성 공부자 탄강 2475년 甲子(서기 1924년) 12월에 창설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全州鄕校重修功績碑(전주향교중수공적비)
全州  尊聖會  紀事碑(전주존성회기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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