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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전주/전주한옥마을

전주한옥마을 은행나무골목 풍남동 은행나무

by Yeongsik_Im 2024.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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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사람이라면 풍남동 은행나무 골목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택시를 타도 은행나무골목이라고 하면 척 알아들을 정도였다. 옛날 전주여고(이후 전주여고가 인후동으로 이사 가고 전주여상으로 변경, 지금의 라한호텔과 공영주차장 사거리)정문에서 한 사거리 내려 오면 나오는 세종당한약방 사거리에서 남천교 방면으로 한 사거리 정도를 은행나무 골목이라고 했다 현재 동부시장에서 남천교까지를 은행로라 하며 은행나무길을 조성했다. 

은행나무길

지금은 은행나무길로 불리우며 전주한옥마을의 관광명소 잘 알려져 있다. 실개천이 흐르고 전주만의 감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누구에게나 고향 같은 아담한 한옥마을을 두루 살펴 볼 수 있는 한옥마을 여행 코스 중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풍남동 은행나무


풍남동 은행나무는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노거수로 1982년 9월 20일 보호수로 지정됐다. 보호수(고유번호 9-1) 지정 당시 수령은 580년이었으며, 수고는 16m, 나무둘레는 4.2m 였다. 

풍남동 은행나무는 고려 우왕 9년(1383년) 조선의 개국공신 월당 최담 선생이 귀향하여 후진양성을 위해 학당을 세우면서 전주 최씨 종대 뜰안에 심은 것이 오늘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은행나무는 벌레가 슬지 않아 관직에 진출할 유생들이 부정에 물들지 말라는 뜻에서 심었다고 한다. 은행나무 밑에서 심호흡을 다섯번 하면 정기를 받게 된다 하여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됐다.

 

최담 선생의 넷째 아들 최덕지(崔德之)가 조선 태종 2년에 이 나무를 심었다는 설도 있다.
최덕지는 인품이 특출난 데다 오복을 다 갖춰 흠모하는 후학들이 많았고,.여인네들이 상사병을 앓을 만큼 남자다운 기상이 넘쳐 흐르는 인물로 알려졌다.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과거를 보러 가는 과객들이 급제를 위해 이 은행나무 앞에서 그의 학문을 숭상하는 묵념을 올리는 관습이 생겼고 후학들은 매년 정월 초하루가 되면 제사를 지냈다.

또 이 은행나무에 제사를 지내면 떡두꺼비 같은 사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전설도 있어 매년 정월 초하루 아들 하나만 점지해 달라고 기도를 올리는 여인들이 줄을 이었던 것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오늘날에도 은행나무 앞에서 묵념을 올리는 여인네들이 간혹 눈에 띄기도 한다.

전주에는 향교와 풍남동 길목에 수령이 600년은 족히 됨직한 은행나무가 서 있다. 은행나무는 벌레가 슬지 않는 나무로 관직에 진출할 유생들이 부정에 물들지 말라는 뜻에서 향교에 심었다고 한다. 풍남동 은행나무는 조산의 개국공신 월당 최담선생이 귀향한 후 후진 향성을 위해 학당을 세우면서 전주최씨 종대 뜰 안에 심은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풍남동의 은행나무는 조선왕조 500년간 갖은 풍상을 겪으며 조선왕조의 흥망을 기켜본 산역사이며 전주사 호남 유학의 본향임을 상징한다. 그래서 전주 사람들은 정겹고 유서깊은 이름 '은행나무 골목'을 사랑한다. 
은행나무길 표지석 안내문

한 때 풍남동 은행나무는 나무의 정기가 강하여 600년 나이에도 2005년부터 나무밑동에 새끼나무가 자라는 길조가 나타나기도 했다. 당시에는 신문과 방송등에 600살 은행나무 회춘했당게, 전주 600년 은행나무 늦둥이 봤다 등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기도 했었다.

은행나무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전주최씨 종대와  동락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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