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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방방곡곡/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도 명승 산방산 보문사 산방굴사

by Yeongsik_Im 2025.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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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한바퀴 돌다 보면 안덕면 사계리에 거대한 조각 작품을 보는 듯한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는 랜드마크인 산방산을 볼수 있습니다. 산방산은 제주 서남부 지역의 평탄한 지형 위에 우뚝 솟은 타원형의 돔형(dome) 화산으로 한라산, 성산일출봉과 함께 제주의 3대 산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산방’은 굴이 있는 산을 의미하는데 산방산 아래 작은 굴에 부처를 모시고 있어 이곳을 ‘산방굴사’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날과 관계없이 낙숫물이 떨어지는데 이를 산방산의 여신인 “산방덕”의 눈물이라고도 한다고 합니다. 

또한 산방산에는 아래와 같이 재밌고도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옛날에 어떤 사냥꾼이 한라산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그 날 따라 그 사냥꾼은 한 마리의 사냥물도 잡지 못했다. 심술이 난 사냥꾼은 허공을 향해 몇 번의 화살을 쏘아 댔는데 그만 화살 하나가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건드려 그의 심사를 건드리고 만다. 한적하게 휴식을 즐기고 있던 옥황상제는 느닷없는 화살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 두리번거리다 옆에 있는 한라산 꼭대기를 뽑아 던져버렸는데 그것이 바로 산방산이다.

하늘나라 선녀로 잠시 인간 세상에 내려온 산방덕이는 화순마을에 사는 고성목이라는 나무꾼이 성실하고 착하여 마음에 그를 품게 되었다. 고성목을 너무너무 사랑한 산방덕이는 그를 지아비로 삼아 부자가 되도록 도우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이 일을 어쩌면 좋으랴. 그 마을 사또가 산방덕이의 미모를 탐하기 시작했다. 몇 번 산방덕이에게 접근을 하던 사또는 오직 남편만을 바라보는 산방덕이가 미워졌다. 어떡하면 산방덕이와 고성목을 떼어 놓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사또는 고성목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멀리 보내버린다. 갑자기 사랑하는 남편과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산방덕이는 사또의 야비함에 치를 떨며 오열하다가 남편이 너무너무 그리워 산방굴사로 들어와 며칠을 목 놓아 남편을 부르다 힘이 떨어져 죽고 만다. 그 후로 산방굴사의 천정에서는 똑똑똑 세 방울씩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이 물이 산방덕이의 눈물이라고 믿었다. 이 물이 영험하다 하여 옛날부터 자식 없는 사람이 제를 드리곤 했었는데 아들이면 물이 넘치고, 딸이면 물이 부족하였다 한다. 비짓제주 산방산 참고

 

산방산에는 온난한 기후에서 자라는 구실잣밤나무, 참식나무, 후박나무, 생달나무, 돈나무, 까마귀쪽나무, 섬회양목 등을 비롯하여 지네발난, 풍란, 석곡 등의 암벽 식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현재 산방산은 2022년 1월 1일부터 2031년 12월 31일까지 지정 구역을 제외한 곳은 산방산의 문화재적 가치 보존과 정상부 천연기념물 '산방산 암벽식물지대' 등의 보호를 위해 출입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산방산 매표소에서 산방굴사까지의 산책로만 탐방 가능하고 반려동물은 출입할 수 없습니다.

산방산

산방산 주변에는 봄이 되면 곳곳에 유채꽃이 만발하기 때문에 노란빛과 어우러진 산방산의 경치를 보러 많은 사람들이 찾는 제주도의 랜드마크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하멜 표류기’로 잘 알려져 있는 하멜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선원으로 난파를 겪어 제주도에 봉착해 1652년부터 1666년까지 조선에 살았습니다. 하멜이 제주도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담은 하멜 상선 전시관이 산방산 바로 아래 자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유채꽃 활짝 핀 제주도 산방산 유채꽃

2월 25일 제주도에 다녀오며 산방신 유채꽃 밭에 유채꽃이 활짝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유채꽃이 활찍 피어있는 산방산 일대를 돌아 보았습니다. 몇일전 제주도에는  폭설이 내렸지만 유채

hyanggyo.tistory.com

 

산방산과 보문사

산방산 중턱에는 보문사라는 사찰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산방산 보문사는 김대현 스님이 1964년 5평 슬레이트 건물의 법당을 시작으로 수행 매진하던 것이 창건 시초로 1969년 4월 15일 25평의 대웅전을 건립하며 현재 대웅전 앞 5층탑엔 석가여래의 진신사리 33과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또한 보문사 5층 탑 옆에는 18척 높이의 용두관음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산방굴사로 올라가는 산방산 입구에는 산방사와 보문사 등이 나란히 산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자연동굴인 산방굴사에 고려 시대의 고승 혜일이 모셨던 것으로 알려진 석불은 일제 식민지 시대 때 일본인이 가져갔다고 합니다. 1960년경에 다시 석불좌상을 모신 것을 계기로, 1985년부터는 지금 동굴 안에 석불좌상을 모셨다고 합니다. 동굴 벽에는 조선시대 관리들이 새겨놓은 바위 새김글이 여럿 남아있습니다. 이 산방굴사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산방산 산방굴사를 찾고 있습니다.

산방산 보문사
보문사 입구 팔정도 뒤로 감로수 약병을 들고 있는 용두관세음보살
미륵반가사유상

미륵반가유상은 미륵보살이 반가좌부로 앉아 사유하고 있는 상입니다. 왼쪽 다리는 내리고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에 얹은 반가좌부 자세로 약간 숙인 얼굴을 오른손 뺨에 살짝 대며생각에 잠겨 잇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부처님으로 태어나 중생을 구제하기로 전해져 있는 미륵보살은 '석가모니가 인도에 태어나기 직전까지 중생교화를 위한 하생(下生)의 때를 기다렸던 곳인 도솔천'에 머물며 정진과 사색에 매진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용두관음상
산방산 봄분사에서 내려다 보이는 용머리해안

산방산 앞자락 바닷가에 있는 수려한 해안절경으로 유명한 용머리 해안은 산방산 주차장에서 10여 분 걸어내려가면  수천만 년 동안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사암층과 파도가 만들어낸 해안 절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작은 방처럼 움푹 들어간 굴방이나 드넓은 암벽의 침식 지대가 펼쳐져 장관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용머리라는 이름은 언덕의 모양이 용이 머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붙여졌는데, 전설에 의하면 용머리가 왕이 날 훌륭한 형세임을 안 진시황이 호종단을 보내어 용의 꼬리 부분과 잔등 부분을 칼로 끊어 버렸는데 이때 피가 흘러내리고 산방산은 괴로운 울음을 며칠째 계속했다고 합니다.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바닷가 바로 옆으로 길이 나있으며, 길이 30~50m의 절벽이 마치 물결치듯 굽어져 있고 높이는 겨우 104m이지만 바다와 직벽을 이루고 있는 명소로 해식애 앞쪽으로 좁지만 평탄한 파식대가 발달되어 용머리해안을 일주할 수 있는 탐방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 바퀴 돌아보는데 30분 정도가 소요되지만 기상악화나 만조 때에는 위험성이 높아 출입을 통제하니 방문 전 미리 관람 가능 시간을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사암층을 따라 걷다 보면 나오는 해안가 일대에서는 해녀들이 좌판을 깔아 놓고 해산물을 판매하고 있으며 용머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하멜기념비가 서 있습니다. 문의 : 064-794-2940

광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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