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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보]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by Yeongsik_Im 2021. 8.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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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은해사에서 나와 985번 도로를 따라 신녕쪽으로 가는 길에 우리나라의 국보인 거조암 영산전이 4km 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어찌 국보를 아니보고 그냥 지나치겠는가~~~급히 차를 돌려 거조암 영산전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오백 나한을 모신 유서깊고 영험있는 나한 기도도량으로 유명한 거조암은 원래 거조사로 은해사보다 일찍 창건되었으나(신라 효성왕 2년(738) 원참조사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경덕왕때 창건되었다고도 한다.)현재는 은해사의 말사로 거조암이라 불리고 있다.

우리 나라 목조건물로 가장 오래된 거조암 영산전(서기 1375)은 고려시대의 대표적 건물로서 부석사 무량수전과 조사당, 봉정사 극락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등 4곳뿐이라는 점에서 더욱 귀중한 문화재가 되고 있다
영산전은 막돌허튼층쌓기 기단위에 정면 7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주심포계 건물이다.

영산전이란 석가여래께서 영축산(영취산)에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설(設)하신 영산회상(靈山會上)을 중심으로 지은 법당이다. 이 영산전은 은해사 창건보다 앞서 신라 효성왕 2년(738) 원참조사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경덕왕 때 창건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영산정 보수시에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고려 우왕 원년(1375)에 건립되었으며 여러 차례 중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거조암 영산전을 얼핏보면 건물 전체가 경판고 같은 분위기를 주고 있으나 건물 내부에는 석가여래, 문수, 보현, 오백나한이 모셔져있다. 간결하고 단순한 맛배집 건물이지만 내부공간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공간감이 훌륭하다. 또 중앙칸 벽에도 널직한 살창을 두어 조명과 환기의 구실을 하도록 잘 설계되어 있다.

기둥의 모습을 볼 때도 기둥의 가운데 부분이 볼록하게 되어 배흘림(엔타시스)이 특이하고 천장을 별도로

만들지 않고 연등천장으로 되어 주심포계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영산전은 사언화상이 그렸다는 영산회상도와 청화화상이 앞산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만들었다는 석가여래와 문수보살, 보현보살 그리고 526분의 나한성중을 모시고 있다.영산전은 현재 국보 제 14호로 지정되어 있다.<은해사 홈페이지 참조>

영산전은 내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중앙칸 벽에는 널직한 살창을 두어 조명과 환기의 구실을 하도록 잘 설계되어 있다.

양산전 바로 앞에 세워져 있는 3.15m 높이의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 전형석탑의 외관을 따르고 있으며, 통일신라 말기~고려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985년 8월 5일 문화재자료 제104호로 지정되었다.

영산전 앞의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말기 ~ 고려 초기에 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
종무소

거조사 종무소는 마치 산사의 카페 같았다. 종무소 뒤로 공양간과 설선당이 았다.

국사전
산신각
영산루

영산루 앞 안내문에는 영천 거조사로 표시되어 있고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거조사는 신라 효성왕2년(738》원참조사에 의해 처음 세워졌다고도 하고 경덕왕때 세워졌다고도 한다. 거조사라는 이름은 팔공산 동쪽 기슭에 위치하여, 아미타불이 항상 머문다는 뜻으로 붙여진 것이다. 사실 이 절은 은해사보다 먼저 지어졌지만, 지금은 은해사에 속하는 말사이다.

거조암의 중심 건물은 영산전으로,돌계단을 오르는 비교적 높은 기단 위에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어져 있다. 영산전은 고려 우왕 원년(1375》에 처음 세워졌으며, 석가모니불상과 526분의 석조나한상올 모시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고려시대의 목조건축물이 13세기 초에 건립된 부석사 무량수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1308), 거조사 영산전(1375), 봉정사 극락전(1363)의 네 곳 뿐이라는 점에서 거조사의 역사적 • 문화적 가치가 크다.

팔공산거조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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