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인동향교에서 낙동강변쪽으로 100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동락서원이 자리잡고 있고 바로 앞에는 동락 신나루터가 조성되어 있다.
나루터는 강이나 좁은 바다물목에서, 배가 닿고 떠나고 하는 일정한 시설로 구미에는 현 구미대교 인근의 동락나루터와 여진나루 하류의 강정나루터, 산호대교 인근의 비산나루터 등이 있었다고 한다.
동락나루터는 비산나루와 함께 구미와 인동지역을 동서로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장사꾼과 학생들이 오가는 정겨운 나루였지만, 1975년 구미대교가 개통되면서 나루의 기능은 상실되었다.
구미시는 나루문화의 보존을 위해 2015년 4월 8일 동락공원 부근에 동락 신나루 문화벨트 사업을 완료했다. 동락신나루는 앞서 조성된 동락공원과 낙동강 수상레포츠 체험센터를 연계하여 수변 문화공원으로 거듭났다. 부근에 있는 강나루 매운탕 식당들이 옛 나루문화에 대한 향수를 일깨우며 지역음식 문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주변에는 동락서원, 인동향교, 여헌기념관 등이 있다.
예로부터 낙동강은 나라의 동맥이자, 구미의 젖줄이었다. 이 거대한 물줄기를 이용하여 나라의 조세운송은 물론 각 지역에서 생산된 물자의 교역과 문화의 소통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근간에 나루가 있었다.이 나루들은 나라가 나뉘어져 있었던 고대에는 전쟁시 전략적 요충지로,고려시대에는 낙동강 수로를 이용하는 배들의 기항지로, 조선시대에는 나라 조세의 운반과 일본에서 오는 사신의 통행로로 주목을 받았다.특히 조선후기에는 국가의 전세(田稅)를 보관하는 조창(權會)이 설치된 나루와 포구는 교역의 중심지로 성장하였다. 선산과 인동은 왜공읍(候供邑)에 속하여, 여기서 거둔 조세는 낙동강 수로를 거쳐 동래의 부산창에 모인 후 일본으로 보내졌다. 이러한 기능을 담당한 구미지역의 나루는 선산의 여차니진(餘次厄津)과 인동의 칠진(漆津)이었음을 『경상도 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_!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여차니진은 일본의 사신을 맞아들이고 환송하는 육로와 수로의 중간 기착지 구실을 하였다.그 외에도 구미에는 감천(甘川)을 비롯한 많은 지류(支流)에 크고 작은 나루가 있어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었으며, 그 곳에서 형성되는 시장문화는 또 하나의 소통과 정보교환의 통로였다.이러한 나루문화는 교량의 건설과 교통문화의 변화를 수반한 근대화 과정에서 점차 그 기능과 역할을 상실해 갔으며 , 1980년대 이후 완전히 그 자취를 감추었다.이곳은 동락나루가 있었던 자리이다. 부근에 있는 강나루 매운탕 식당들이 옛 나루문화에 대한 향수를 일깨우며 지역음식 문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옛 것의 보존, 그 중에 나루문화가 있으며 구미시는 이를 위해 2015년 4월 8일 동락공원 부근에 동락 신나루 문화벨트 사업을 완료했다. 동락신나루는 앞서 조성된 동락공원과 낙동강 수상레포츠 체험센터를 연계하여 수변 문화공원으로 거듭났다 .
동락신나루터 안내문
기존에 조성된 동락공원과 낙동강수상레포츠체험센터와 연계해 수변 문화공원으로 꾸며진 동락신나루는 낙동강을 조망할 수 있는 나룻배 형상의 전망대, 돛을 상징하는 조형물, 야간조명이 어우러진 바닥분수, 구미과학관으로 가는 산책로 등이 조성돼 있다.
나룻배전망대 전시관에는 낙동강 나루에서 사용되었던 나룻배가 전시되어 있고 나루터와 나루터의 역사, 전국의 나루터 현황 등 을 소개하고 있고 관광해설사가 상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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