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30호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慶州 皇福寺址 三層石塔)을 관람하고 가는 길에 또 하나의 국보를 만나고 왔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7호로 지정된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이다. 황복사지 삼층석탑은 경주시 구황리 마을 입구에 국보답게 그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세워져 있다. 그러나 주변에 관광지나 볼거리가 없어서인지 국보인 황복사지 삼층석탑은 나홀로 외롭게 황복사지터를 키키고 있다.
황복사는 낭산(狼山) 동북쪽에 있었던 신라 시대의 절로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출가하였다. 이 탑은 전형적인 신라 삼층석탑이다. 바닥돌의 각 면마다 2개씩 안기둥을 새기고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지붕돌 밑면에 5단의 받침을 두었고,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돌인 노반만 남아있다.
기록에는 효소왕 원년(692)에 신문왕비인 신목태후와 그 아들인 효소왕이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탑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효소왕의 뒤를 이은 성덕왕이 706년에 다시 부처님 사리와 순금불상 등을 봉안하여 신문왕과 효소왕 두 왕의 명복, 왕실의 번영, 그리고 태평성대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1942년에 탑을 해체, 수리할 때 2층 지붕돌 안에서 금동으로 만든 사리함과 순금으로 만든 불상 2구, 유리구슬 등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사리함의 뚜껑에는 탑을 건립하게 된 이유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탑은 건립 시기가 명확하다. 또 감은사지 동 • 서삼층석탑(국보 제112호),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8호)과 비교함으로써 통일 신라 시대 초기 석탑의 변화 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높은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 <황복사지 삼층석탑 안내문 참고>
기단부는 여덟 장의 장대석으로 구축된 지대 위에 구성되었고, 하층기단은 면석과 갑석이 각각 8매로 짜여졌는데, 각 면에는 우주(隅柱)와 2주의 탱주(撑柱)가 모각되었으며, 갑석 상면에는 호형(弧形)과 각형(角形)의 2단 굄이 있어, 그 위의 상층기단을 받치고 있다.
상층기단 중석은 8매로 조립하였는데, 각 면에 우주와 2주의 탱주가 모각되어 있다. 4매의 판석을 결구하여 덮은 상층기단 갑석은 하면에 부연(副椽)이 있으며, 상면에는 2단의 각형 굄대가 있어, 그 위의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각기 하나의 돌로 조성되어 있는데, 각 층의 옥신에는 각 면에 우주가 있다. 각 옥개석의 받침은 5단씩이고 상면에는 2단의 각형 굄대를 마련하여 그 위층의 옥신석을 받치게 하였는데, 이러한 양식은 신라석탑의 독특한 점이라 할 수 있다.
낙수면이 평평하고 4면의 합각이 예리하며, 네 귀퉁이 전각의 발전도 경쾌하여 단아한 탑신부를 이루고 있다. 이 석탑은 통일신라 초기의 석탑건축 양식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점에서 주목된다. 즉, 작은 석재를 이용하여 결구하였던 초기의 석탑과는 달리 단일석으로 쌓아올렸으며, 기단부의 탱주도 3개에서 2개로 줄어들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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