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공주 계룡산 신원사 인근에서 육추중인 후투티를 탐조하려 들렸다가 예로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여긴 계룡산의 수많은 사찰중에 가장 오래된 사찰인 신원사를 비가 내리는 와중에 잠시 돌아 보았다.
백제 시절의 고찰인 신원사는 동학사, 갑사와 함께 계룡산의 3대 사찰로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위치하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봄에 피는 밪꽃, 철쭉, 백일홍과 가을의 화려한 단풍, 겨울의 설경으로 사진찍기 좋은 명소 중 하나이다.
신원사는 계룡산에 있는 많은 사찰 중 가장 오래된 사찰로,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보덕이 지었다고
전한다. 신원사 대웅전은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여러 차례 다시 지어졌다. 임진왜란 중에 불탄 적도 있으며, 철종 11년(1860)에 건물 수십 칸이 불에 타 없어지자 나라에서 특별히 재물을 지원해 다시 짓기도 하였다. 현재의 대웅전은 고종 13년(1876)에 보연이 지은 것을 1906년과 1946년에 다시 고친 것이다.
대웅전에는 아미타여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세 분을 모셨다. 화려한 팔작지붕(지붕 위에 까치 박공이 달린 삼각형의 벽이 있는 지붕)에 처마 끝을 살짝 올려 우아함을 더했고, 기둥 사이의 공포(한국중국일본 등지의 전통목조건축에서 처마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맞추어 댄 부재)에는 연꽃을 조각했다. <신원사 대웅전 안내문>
공주 계룡산 중악단
통일 신라시대 이래로 국가의 산천제사처 중 하나로 나라의 안녕을 위해 국가적으로 지낸 제는 북쪽의 묘향산 상악단, 중앙 계룡산의 중악단, 남쪽 지리산의 하악단에서 모셨다.
중악단(보물 제 1293호)은 국가제사공간으로 명성황후가 기울어가는 국가를 위해 단을 세우고 기도하였는데, 작지만 왕실건물의 형태로 지어져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이다.
중악단에서는 매년 계룡산 산신제가 열린다. 이 산신제는 유가식, 불가식, 무가식이 융합된 조화로운 산신제로 진행된다.
중악단은 국가에서 계룡산 신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마련한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조선시대에는 북쪽의 묘향산을 상악으로, 남쪽의 지리산을 하악으로, 중앙의 계룡산을 중악으로 하여 단을 쌓고 산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무학대사의 꿈에 산신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태조 3년(1394)에 처음 제사를 지냈다고 전하며, 효종 2년(1651)에 제단이 폐지되었다. 그 후 고종 16년(1879)에 명성황후의 명으로 다시 짓고 중악단이라 하였다.
구릉지에 동북 • 서남을 중심축으로 하여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악단을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하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다. 건물배치와 공간구성에 단묘(檀廟)건축의 격식과 기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현재 상악단과 하악단은 없어지고 중악단만 보존되어 있어, 나라에서 산신에게 제사지냈던 유일한 유적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공주 계룡산 중악단 안내문>
중악단은 구릉지에 동북·서남을 중심축으로 하여 대문간채, 중문간채, 중악단을 일직선상에 대칭으로 배치하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다
중악단은 1.5m의 높은 돌기단 위에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조선 후기의 특징적인 수법으로 조각·장식하여 화려하고 위엄있게 하였다. 또한 각 지붕 위에는 각각 7개씩 조각상을 배치하여 궁궐의 전각이나 문루 또는 도성의 문루에서 사용하던 기법을 쓴 점도 특이하다.
병자호란이 끝난 지 30년도 채 지나지 않은 1664년 계룡산 신원사(당시 사찰 이름은 신정사)에서 만들어진 괘불은 높이가 10m, 너비는 6.5m에 달하며 무게도 100㎏이 넘는다. 괘불(掛佛)은 야외 법회에 사용하던 불화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불교 문화재로 국보 제299호이다.
그림 가운데에 있는 부처는 노사나불로 노사나불은 오랜 수행 끝에 부처가 된 보신불이다.
독성각은 신원사 대웅전 좌측에 자리 잡고 있는 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동향을 한 건물이다. 나반존자와 칠원성군이 모셔져 있으며 조선시대 고종조 보련 화상의 진영도 모셔 있다. 이 전각은 1982년 원융대사의 원력으로 건립되었다.
벽수선원은 1982년 계룡선원으로 세웠졌으나 1988년 숭산스님이 한국 불교의 국제화를 촉진하기 위해 국제선원으로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세계 각국의 승려들이 매년 동안거 때 참선 수행 정진하고 있다. 1988년 동안거에 18명, 1989년 동안거에 16명, 1990년 동안거에 18명, 1991년 동안거에 24명, 1992년 동안거에 21명, 1993년 동안거에 19명, 1994년 동안거에 14명, 1995년 동안거에 20명, 1996년 동안거에 20명, 1997년 동안거에 21명, 1998년 동안거에 20명 등 1988년부터 1998년까지 200여 명의 승려들이 동안거 결제를 지냈다.
참선 수행 정진에 참여한 승려들의 국적은 미국·캐나다·싱가포르·프랑스·멕시코·독일·폴란드·호주·스페인·영국·말레이시아·러시아·홍콩·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이스라엘·대만·헝가리 등이다.
신원사 오층석탑은 원래 신원사의 중심에 자리했던 탑이었으나 지금은 중악단 남쪽에 세워져 있다.
두개의 기단위에 5층의 탑신이 있었지만 지금은 4층 지붕돌까지만 남아 있다.탑의 몸체가 기단에 비해 둔해 보이고 지붕돌의 폭이 비슷해서 중후한 느낌을 준다. 탑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도드라지게 조각해서 나무로 만든 탑 처럼 보이게 하였다.
1975년 보수공사를 할 때에 중국 당나라의 동전인 개원통보와 송나라의 동전인 함원통보, 황송통보, 주동이와 손잡이가 깨어진 자기주전자, 녹색 율리로 만든 목이 긴 병 등이 발견되어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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