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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나라사랑공원 · 매헌 윤봉길의사 동상

by Yeongsik_Im 2023.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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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에산읍에서 덕산 쪽으로 가다가 오가사거리를 지나면 왼쪽으로 윤봉길의사 동상이 세워져 있는 '윤봉길나라사랑공원'이 있다. 예산군은 우리나라의 대표 독립운동가인 윤봉길 의사가 태어난 고장이다.

윤봉길 의사 동상

윤봉길 의사 나라사랑공원은 예산군이 윤봉길 의사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뤄낸 수많은 업적을 공원에 담아 널리 알리고자 에산군 오가면 역탑리 64-2번지에 23억원을 투입 조성됐다.

공원에는 윤봉길 의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생애도, 아트월, 추모비, 암장지 등도 같이 조성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윤봉길 의사 일대기
윤봉길의사 동상은 기단 6.5m, 동상 7m, 총 13.5m의 규모로 조성되어 있다.
매헌 윤봉길 의사

순종 융희 2년인 1908년 6월 21일 도중도 생가에서 윤황 공의 장남으로 태어난 윤봉길 의사는 15세 때 학력이 뛰어나 천재 소리를 듣기도 했으며, 19세 때인 1926년에는 야학회와 독서회를 창설해 문맹퇴치에 힘썼고 1927년에는 농민독본을 집필해 농촌부흥운동과 민족운동을 전개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압제를 목도한 윤봉길 의사는 1930년 3월 6일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이라는 비장한 유서를 남기고 망명길에 올라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천장절 상해사변 전승축하 식장을 폭파하는 대의거 거사를 일으켰다.

이후 현장에서 일본군에 체포된 윤봉길 의사는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일본 오사카 위수형무소에 수감됐으며, 같은 해 12월 19일 총살형을 받아 25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했다.

 

이 사건은 중국 등 세계에 알려졌고, 중국의 지도자 장제스는 “중국 100만 대군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고 격찬한 바 있으며, 윤 의사에게는 1962년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 중장이 추서됐다.

윤봉길 나라사랑 공원 아트월
윤봉길 나라사랑 공원 아트월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하여 산다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 맷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충 강의 (剛毅) 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그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 길을 택하였다
윤붕길 의사 어록 중에서

윤봉길 의사 순국 장면
가나자와 윤봉길의사 암장지 재현
윤봉길의사가 순국 후 일본 가나자와 시에 암장된 장소를 재현했다.
운봉길나라사랑공원을 찾은 한 관광객이 윤봉길의사가 남기고 떠난 유서인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를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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