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북구 기계면 화대길94번길 21 (화대리) 에 위치하고 있는 성강서사는 임진왜란 당시 전공을 세워 경상도 병마절도사를 제수받고 제흥군에 봉해진 해장 고언백(?~1609)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당이다. 1851년 기계면 성계리에 건립된 후 대원군 때 훼철되어 1965년 현 위치에 복원하였고 2016년 10월 16일 유형문화유적 제2018-03호로 지정되었다.
2024년 7월 28일 호국사찰 용화사 가는 길에 잠시 들려 보았으나 개방은 하지 않고 있었다.
조선시대의 무신으로 군관 변장(籩將)을 역임한 고언백(高彦伯)은 본관은 제주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원군수로서 대동강 등지에서 적을 맞아 싸우다가 패배하고, 계속 분진하여 그해 9월 왜병을 산간으로 유인, 지형을 이용하여 백,천여명의 목을 베었다. 그 이듬해 양주에서 왜병을 전원 참살한 공으로 왕은 특별히 당상관으로 올리고 양주목사로 삼아 능침(陵寢)을 보호 하도록 하였다. 양주에서는 장사를 모집하여 선속 험준한 곳에 진을 치고 복병하였다가 왜병을 공격하여 전과를 크게 올렸다.
임진왜란 당시 고언백장군은 왕성탄전투, 벽제관전투, 해유령전투, 노원평전투, 울산, 경주, 영천, 안강 전투 등 많은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다. 특히 장군이 승리로 이끈 노원평전투는 임진왜란 전란사에 기록될 만큼 유명하고 치열한 전투로, 왜군이 한양 도성에서 물러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승병장 사명대사 유정군과 합세하여 가토기요마시군의 선봉부대를 섬멸시키는 전과도 올렸다. 해장실기는 고언백장군이 이천전투에서 왜군을 무찌른 내용으로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태릉이 한때 왜군의 침범을 받았으나 그의 수비로 여러 능이 잘 보호될 수 있었다. 이에 왕이 공을 칭찬하고 관급을 더 올려 경기도방어사에 영전시키고 이를 표창하였다. 또, 내원한 명나라 군사를 도와 서울탈환에 공을 세우고 경상좌도병마절도사로 승진하였으며, 정유재란 때는 경기도방어사가 되어 전공을 크게 세웠고, 난이 수습된 뒤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책록되고 제흥군에 봉하여졌으며 병조판서로 추증된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한 뒤 임해군을 제거 할 때, 임해군의 심복이라 하여 살해되었다.
전체적인 배치는 외삼문인 경덕문과 강당인 충의당, 사당인 충의사를 동일 축선상에 안배한 후 강당의 전면 좌우에는 동재와 전사청을 두었으며 우측 담장 밖에는 비각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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