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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대통령 고향 포항 덕실마을 · 덕실관

by Yeongsik_Im 2024.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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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에서 흥해를 지나 7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이명박대통령 고향마을' 이정표가 많이 보인다. 일주일 전인 16일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퇴임 후 11년 만에 이 곳을 다녀갔다.

언젠가 한번 가볼 예정이었는데 오늘은 내연산으로 친구를 배웅하러 좀 일찍 나선 김에 덕실마을을 돌아 보기로 했다. 7번 국도에서 잘 포장되어 있는 도로로 약 5km정도 들어가면 이명박대통령 고향마을인 덕실마을이 나온다.

경상북도로부터 효(孝) 시범마을로 지정된 포항시 북구 흥해읍 덕성1리는 예로부터 예와 덕을 중시하는 충절의 고장으로 덕이 있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덕실마을로 불리고 있다. 덕실마을은 신라 지증왕(505년) 때 퇴화현에 속한 후 퇴화현에서 의창군으로 행정구역을 거쳐 고려 초에 이르러 흥해군이 되엇으ㅜ며, 1789년에서야 북상면 덕곡천으로 불리게 되었다.그 후 1914년 영일군-흥해군-장기군-청하군이 영일군으로 통합되었으며,1995년 영일군과 포항시가 통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유적으로는 이상재와 담화정이 있는데 이곳은 당대 선비들이 거처히어 공부하던 곳으로, 그들의 학문적 수준이 매우 높아인근의 달전, 흥해, 기계, 청하지역의 재지사(可他士林)을 영도하는 위치에 있기도 하였다. 지금도 많은 고서가 소장되이 있는데 이 자료들을 통해 당시 유학자들의 학문의 경지를 엿볼 수 있으며, 덕실마을의 유풍이 동해안 일대의 유림에게 큰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얼마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2013년 대통령직 퇴임 이후 11년 만에

포항 덕실마을에서 열리는 경주이씨 입항조 재실인 ‘이상재(履霜齋)’ 기념식수와 현판 제막식에 참석했다. 이 전 대통령은 시조인 이알평의 73대손, 입항조 이준의 11대손으로 알려져 있다.

포항시는 지난 2011년 2월 북구 흥해읍 덕실마을에 국비 10억원, 도비 20억원, 시비 25억원 등 55억원을 들여 연면적 411㎡, 지상 2층 규모의 이명박 전 대통령 기념관인 덕실관을 건립했다. 또 바로 옆 부지에 이 전 대통령 부부의 조각상 등이 있는 덕실생태공원과 일대 탐방로를 조성했다.

덕실관은 1층에 휴게실과 기념품 판매점, 전시실을, 2층에는 영상관과 정보검색코너 등을 마련해 관광객들에게 덕실마을의 유래와 전 대통령의 활동을 소개하며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실외에는 파고라와 벤치 등을 설치해 덕실마을을 찾는 외래 관광객들이 잠시나마 머물러 갈 수 있도록 다양한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포항시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마을인 덕실마을을 찾은 관람객은 집계를 시작한 지난 2012년 9만1329명을 비롯, 2013년 8만7797명, 2014년 10만4363명, 2015년 11만8152명, 2016년 15만8101명으로 정점을 찍었고, 이후 2017년 11만2540명, 2018년 5만234명, 2019년 2만6244명, 2020년 8945명, 2021년 5571명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이 같은 방문자 수는 이먕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구속, 촉발지진, 코로나19 여파 등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필자가 방문한 날도 일요일이었으나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고 기념관은 동네 주민이 지키고 있었다.

덕실마을과 덕실관, 복원된 고향집 등에서 30여분 정도 머물렀는데 다른 방문객들은 볼 수 없었다.

덕실마을 안내도
덕실관과 덕실생태공원
뒷면에는 제17대 대통령 취임사 중 일부가 새겨져 있다.

복원된 고향집 앞쪽에는 2,170장의 타일로 표현된 석창원 도예작가의 '그때 그시절 이명박대통령의 흔적을 찾아서'라는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이명박대통령 고향집 복원
이명박 대통령 고향집 안내문에는 포항 영흥중학교 졸업사진과 포힝중학교, 동지상고 시절 사진읋 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 가족은 광복 직후인 1945년 11월 이 곳 포항시 흥해읍 덕성리의 고향집으로 돌아와 정착하였으며, 이때 이명박 대통령의 나이는 4살이었고 6살때까지 살았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집은 6.25때 폭격을 받아 안채가 소실되어 없어졌으며, 이후 현 거주인이 터를 매입하여 양옥을 신축하면서 남아있던 사랑채, 아래채, 우믈이 철거되어 현재 당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상태이다.

초기에는 이 곳을 이명박대통령 생가라고 했다가 현재는 고향마을, 고향집이라고 정정한 것은 이명박대통령은 일본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에만 여기에서 몇년 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 위치에 복원된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집은 이명박 대통령의 조부모가 거주하였던 안채와 이명박 대통령 가족이 귀국 후 거주한 사랑채, 그리고 농긱구 등을 보관하던 아래채, 그리고 우물가 등 이명박 대통령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집의 모습을 고증을 통해 재현해 놓은 공간이다.

안채와 아래채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라는 아호는 ‘초서의 달인’으로 불리는 서예가 취운(翠雲) 진학종 선생이 이 대통령에게 지어준 것이다. 진의종 전 국무총리(1995년 작고)의 동생인 취운 선생은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 청계천 복원사업을 시작하기 전 ‘청계유룡(淸溪遊龍)’이란 한자어에서 ‘청계’를 떼어내 초서체로 휘호를 만들어 줬다고 한다.

덕실휴계쉼터와 덕실관(사진 오른쪽)
덕실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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