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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방방곡곡/전북특별자치도

동학농민혁명의 발단 만석보 萬石洑地

by Yeongsik_Im 2024.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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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보 쉼터에서 내려와 약 700여미터 거리에 있는 만석보가 있었던 만석보지(萬石洑地)로 간다. 만석대교를 건너면 우측으로 동학농민혁명유적지 만석보터 이정표와 만석보유지 표지석이 나온다.

만석보 가는길
만석보유지 표지석
만석보유지비와 만석보유지정화기념비 뒤로 정읍천 건너 만석보 쉼터가 보인다.

봏는 농사에 사용하기 위해 냇가에 둑을 쌓아 물을 가두어두던 곳이다. 원래 정읍천 상류에는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예동보라는 민보가 있었다. 그런데 조선 고종 30년(1893)에 고부 군수로 부임한 조병갑이 민보 아래에 만석보를 쌓으며 농민들을 강제로 일하계 하였고, 주인의 허락도 없이 나무를 베어 사용하였다, 또한 보를 쌓은 뒤에는 수세(봇물을 이용하는 대가로 지급하는 돈이나 곡식) 명목으로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였다.

결국 1894년 조병갑의 포악한 정치와 과중한 세금으로 힘들어하던 농민들은 만석보를 혈었다. 이는 동학농민혁명의 발단이 되었으며, 1973년 이곳을 기념하기 위해 사적비를 세웠다.

萬石洑遺址碑(만석보유지비) 글씨는 송성용 선생(1903~1993)이 썼다.
萬石洑遺址淨化記念碑 만석보유지정화기념비 1987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33호 지정 표지석
만석보지 안내문
만석보 조감도
양성우 시인의 "만석보" 시비 1999년에 건립됐다.

"들리는가, 친구여. 갑오년 흰눈 쌓인 고부들판에 성난 아비들의 두런거리는 소리, 만석보 허무는 소리가 들리는가, 그대 지금도 그 새벽 동진강머리 짙은 안개 속에푸른 죽장 불끈 쥐고 횃불 흔들며 아비들은 몰려갔다. 굽은 논둑길로".......................원한 쌓인 만석보 삽으로 찍으며 여러 사람이 한 사람처럼 소리소리쳤다. 만석보를 허물어라. 만석보를 허물어라.”

만석보 쉼터와 만석보터를 들렸으니 이제 만석보혁파선정비로 간다.

이어서 동학농민혁명 최초 봉기 상징조형물, 말목장터와 감나무, 정읍 전봉준 유적, 동학력명기념관 등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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