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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방방곡곡/전북특별자치도

전주 차이나거리 다가동 구 중국인 포목상점 전주부성 서문지

by Yeongsik_Im 2024.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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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는 1996년 물의 도시 중국 쑤저우(蘇州)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후 화교소학교와 중국인 포목상점에 가가운 다가동 일대 250m 구간을 차이나 거리로 조성했다. 2002년에는 소주시(蘇州市)  인민정부에서 설치한 ' 蘇州街(소주가)' 라는 화려한 누각도 세워졌다. 

근대화 유입 시기 비단상인, 요리점, 벽돌공 등 다양한 직업군을 형성한 중국인 상인들이 서문 밖에 마을을 형성하여 100여 호가 모여 살았다고 한다. 당시 중국인 포목상점이었던 건물은 전동성당을 쌓았던 중국인들이 붉은 벽돌로 지은 것으로 국가등록문화재 제174호로 지정되었다. 인근에는 국가등록문화재 제173호 '중앙동 구 빅디옥'이 위치하고 있다.  

차이나거리 안내문
전주화교소학교
전주화교소학교

전주 다가동 구 중국인 포목상점은 1928년 무렵에 다가동 주변의 작은 점포를 통합하여 지은 상가 건물로 주로 비단을 판먀하였다고 한다. 이 건물은 전동성당 건축에 참여했던 중국인 기술자들이 중국 상하이에 있는 전통비단상점의 형태를 본떠 지었다.  서양식 근대 건축과 중국 건축의 고전적 요소가 합쳐진 톡특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건물은 근대 화교들이 전주에 들어와 정착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건물로서 역사적 가지가 높다.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전주부성 서문지

전주부성은 고려말 최유경(崔有慶)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1734년에 조현명(趙顯命)관찰사가 크게 고쳐 짓고 동•서•남•북 4대문을 설치하였다. 이때 서문은 상서문(相西門)이라 하였는데, 1767년 이른바 정해년 대화재로 남 • 서문이 소실되었다. 같은 해 9월에 홍낙인(洪樂仁)관찰사가 이를중건하고 ‘풍패'의 ‘풍' 자를 남문에 붙여 ‘풍남문(豊南門)’ 이라 하였고, 같은 의미로 전주부성의 서문은 '풍패’ 의 ‘패’ 자를 따서 ‘패서문(沛西門)’ 이라 하였다.


서문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할 때 처음 들어간 곳이라는데 큰 의미가 있으며, 1907년에서 1909년 사이에 철거되었다. 또한 근대 중국상인들과 서양 선교사, 일본 상인 등이 이 지역 주변으로 터를 잡아 외국문물이 들어오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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