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한민국방방곡곡/전북특별자치도

여산동헌 - 전북 익산시 여산면

by Yeongsik_Im 2024. 10. 3.
반응형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익산리에 있는 여산 동헌(礪山東軒)은 조선 시대 여산 고을의 수령이 업무를 보던 청사입니다.  이 건물은 3단의 계단식 건물터 제일 상단부에 들어서 있는데, 조선 시대 말기에 건축한 것으로 보이며,. 벽과 방은 최근에 일부 개조하여 본모습은 잃었지만,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추녀와 대청머루에서 한식 목조 건물의 원형적인 아름다움이 잘 드러납니다. 전국적으로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옛 모습을 간직한 조선 시대 지방 관청 건물의 하나입니다.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지나는 길에 몇번 들렸보았으나 평소 개방은 하고 있지 않고 방문을 원하시는 분은 여산면 행정복지센터로 연락하라는 연락처가 적혀 있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여산까지 왔으니 연락을 할까 했으나 다음으로 미루고 담장 너머와  문틈 사이로 폰 사진만 몇장 촬영했습니다. 여산 동헌 앞에는 개교 100년이 훨씬 넘은 유서 갚은 여산초등학교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동헌 건물만 있고 내아나 다른 건물들은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동헌 우측에 남아 있는 협문을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평상시 개방은 하지 않고 있고 관람하기 위해서는 여산면 행정복지센터로 연락하여야 합니다. 연락처가 적혀 있는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여산동헌과 문화재 관람 안내문
열녀비

 

여산동헌 열녀비 - 방한창의 처 김소사

여산동헌(礪山東軒) 정문 오른쪽에는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었는데 동헌과 관련된 비석인가 하여 살펴 보았더니 의외로 방한창의 처 김소사의 열녀비 였습니다.  여산동헌 - 전북 익산시 여산

hyanggyo.tistory.com

여산동헌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팔작지붕집입니다. 낮은 기단 위에 앞면과 왼쪽에는 약 90㎝ 높이의 둥근 주춧돌을 놓고 뒷면과 오른쪽은 경사지를 이용하여 낮은 주춧돌을 놓았고,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를 짜지 않고 소박한 민도리로 처리하였으며, 앞뒤에 퇴칸을 두었습니다. 오른쪽 2칸은 온돌방이고 나머지는 대청마루로 되었으며, 온돌방이 있는 부분은 주춧돌이 높아 마룻바닥 밑으로 사람이 들어가 불을 땔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여산동헌

또한 여산동헌에는2002년 8월 2일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116호로 지정된 둘레 4.5m, 높이는 22m의 느티나무가 있는데 유래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다만 여산동헌과 주변에 7주의 대형 느티나무가 집중 분포되어 있음에 따라 동헌의 설치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할 뿐입니다.

여산은 전주에 속해 있다가 공양왕 3년(1391) 감무를 두고 낭산과 공촌, 파제 두 부곡의 권농사까지 겸임하였고, 조선 태종 2년(1402)에 여산현이라 하고, 세종 18년(1436)에는 원경왕후의 외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다고 하므로 느티나무는 조선 태종대에서 세종대에 동헌이 설치되는 과정에서 식재되었을 것으로 보여 수령은 600년 정도로 추정됩니다. 

여산동헌 마당 한쪽에는   여산척화비가 있고 그  뒤에는 여산군에서 선정을 베푼 역대 관리들의 선정비 8기가 세워져 있 습니다. 여산척화비를 촬영하려고 문틈으로 손을 넣어 보아도 안되더군요~~~우측에 보이는 울타리 안에 세워져 있습니다. 

 

척화비는 흥선대원군이 서양 제국주의 세력이 밀려 들어와 개항을 요구하며 사회를 혼란시키자 항전 의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전국에 세운 척화비 중 하나로 1882년 임오군란 이후 흥선대원군이 실각하자 일본공사관의 요구로 철거되었다가 1915년 여산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발굴되어 여산동헌으로 옮겨 세워졌습니다. 여산척화비는 2002년 5월 30일 익산시 향토유적 제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척화비에는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洋夷侵犯非戰則和主和賣國)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를 하자는 것이니, 화해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여산동헌 앞에는 병인박해 당시 전라도 여산군의 속읍이었던 고산, 금산, 진산 등의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장소인 백지사터가 있습니다. 백지사터는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 방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 방법이 얼굴에 물을 뿜고 백지 붙이기를 여러 번 거듭하여 질식사시키는 백지사(白紙死)였기 때문입니다. 백지사터에 대한 이야기는 이어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