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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방방곡곡/전북특별자치도

익산 여산초등학교 · 여산 독립만세 운동 기념비

by Yeongsik_Im 2024.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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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단전부근에 해당하는 여산은 호남고속도로와 1번 국도가 통과하는 호남의 최초 관문으로 충남 논산시 연무읍과 경계를 이루고 남으로는 왕궁면 서로는 금마, 낭산면 서북으로는 망성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특히, 여산에는육군의 정예부사관 육성의 요람인  육군부사관학교가 있어 자주 들렸던 곳이기도 하다. 


선사시대(구석기)부터취락이 형성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礪(숫돌여)山은 농경시대에 유용한 숫돌이 많이 나는 산으로 불리었다. 마한시대에는 여래비리국으로 백제시대에는 지량초현으로 알아산현으로, 통일 신라부터 여량현과 여산현으로 이어져 왔다.

 

조선시대 태종2년 낭산현 병합한 여산현(礪山縣)은 세종18년 충청도 예속으로 군으로 승격하였고 세종26년에는 전라도로 환원됐다. 숙종25년 (1669년) 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고종33년 갑오개혁 당시 군, 현급 행정구역을 군으로 통일하여 여산군으로 변경되었다. 1995년 5월10부터 익산시 여산면으로 행정구역이 개편 되었다. 

 

1919년 전국 방방곡곡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날 때 여산에서도 3·1독립만세운동을 맹렬히 전개하며 위세를 떨쳤다. 여산초등학교 교정에는 국가보훈부 현충시설로 지정된 '여산 독립만새 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 곳은 당시 일본군 헌병분견소가 있던 자리였다.

여산 독립만세 운동 기념비

경술국치(1910년) 이후 일제의 식민 통치아래 신음하던 우리 민족은 미국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하자 자주독립을 쟁취하고자 1919년 3월 1일 3·1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다. 독립만세운동은 삽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되어 전북서부지역에서도 3월 5일 군산에서 한강이남 최초로 일어낫으며 이후 여산·익산(금마)·원평·정읍으로, 4월 4일에는 이리 및 김제 만경 지역에서 독립의 함성이 온누리에 울려 퍼졌다.

 

당시 천도교 이리교구 소속 교인들에 의해 인근 각 지역으로 독립선언서가 배포되었는데, 3월 10일 여산 새슬막(신막)에서 지식인들과 면민들로 구성된 200여명의 시위대가 '조선자주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앞세우고 여산 헌병분견소를 향해 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일본경찰에 의해 주동자는 체포되고 시위대는 결국 해산되었다. 

 

2003년 5월 1일 여산면의 뜻 있는 주민들은 여신지역 3·1독립운동에 참여한 선열들의 애국애족정신을 높이 기리고자 힘을 모아 당시 일본군 헌병분견소가 있엇던 자리에 이 비를 건립하였으며, 국가보훈처에서는 동년 9월 15일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

여산초등학교

여산초등학교
여산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비

여산초등학교를 들어서면 좌측으로 각종 기념비와 동상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개교 100주년 기념비이다. 여산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비 윗돌에는 가람 이병기 선생의 시 '별'이 새겨져 있다.

여산동헌 앞에는 2012년 5월 1일 개교 100주년을 맞았던 유서깊은 여산초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1963년 3월 1일에 32학급 규모의 학교가 된 여산국민학교는 1967년에는 여산남국민학교, 1976년에는 여산서국민학교로 분리되기도 했었는데   2009년 3월 1일 학생수의 감소로 인해 여산서초등학교와 여산남초등학교는 여산초등학교로 통합됐다. 2024년 1월 8일에는 제110회 11명이 졸업했으면 총 9,78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여산초등학교는 여산군 향청 건물에 이 고장의 석학 성제 김영진 선생께서 지금의 부지에 1907년에 사립호산학교를 설립한 것을 시초로 1909년에 여산향교 명륜당의 사립보성학교가 임야 일부의 터부터 편입, 병합 됨으로 사립호성학교라 개칭 1910년 한일합병 후 1912년 5월 1일 여산공립보통학교로 전환 개교하였다.

가람 이병기박사상

여산면 원수리 진사 출생이신 가람 이병기선생은 여신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1948년 10월 1일 여산국민학교 교가를 작사했다. 가람 이병기박사상 아래에는 여산초등학교 교가가 새겨져 있다. 

충무공이순신장군상

여신초등학교 앞에는 조선 시대 여산 고을의 수령이 업무를 보던 청사인 여산동헌(礪山東軒)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장소인  백지사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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