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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시 계룡대 계룡산 신도안 도성 주초석 및 석재

by Yeongsik_Im 2021.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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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시 계룡대 계룡산 신도안 도성 주초석 및 석재

계룡산신도내주초석석재 鷄龍山新都內柱礎石石材

대한민국의 삼군본부가 위치한 충청남도 계룡시 신도안면 부남리 계룡대 내에는 계룡산 신도안 주초석 및 석재가 있다. 이곳의 주춧돌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개가 계룡산 일대로 도성 이전을 결정 하고 도성공사에 사용하기 위해 다들던 석재로서 부남리, 석계리, 정장리 일대에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놓은 것이다. 수량은 약 115개이다.

신도안 도성 추측도

신도안 도성 추측도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이곳 계룡산 일대를 도읍으로 정한 이후 일정기간 도성 조성공사를 추진한 사실율 토대로 완공되었을 당시의 상항을 추정하여 제작한 것이다.

1392년 개국한 조선은 474년간 지속되어 온 고려의 사회체제에서 벗어나고자 천도를 추진하였으며, 새로운 수도로 한양과 함께 계룡산 일대가 거론되었다. 이 과정에서 권중화(植仲和)가 양광도 계룡산의 도읍지도를 바쳤고, 태조는 신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393년 1월에 직접 계룡산 일대의 자세히 살피기 위해 행차하여 2월 8일에 도착하였다、권중화가 그린 신도에 들어설 종묘 사직 공전 조시를 만들 지세를 토대로 땅을 축량하고,계룡산의 신도 건설 공사가 시작되었다.

신도건설이 착수된 이후 3월 24일에는 계룡산의 신도를 중심으로 81개의 기내(畿內)• 주현(州關)• 부곡(部曲•향소(鄕所)를 확정하였다. 계룡산의 신도건설은 1393넌 2월에 시작했으나 그해 12월에 갑자기 공사가 중지되고, 모든 계획이 취소되었다, 그 이유는 당시 하륜의 반대 때문이었는데, 계룡산이 지리적으로 나라의 중앙이 아니고 풍수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신도건설 공사는 10개월간 진행되었는데, 공사 중 봄과 가을 농번기에는 잠시 중단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실제 공사 기간은 그 보다는 짧았으며,궁궐의 터를 다지고 건물의 주춧돌을 깎는 정도의 공정이 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도건설올 위한 도성의 설계도가 있었을 것이지만 남아있지 않아 구체적인 시설의 배치계획 등은 알 수 없다,다만. 대궐평•종루터 •동문터 등의 지명이 남아있으며. 신도건설에 얽힌 각종 이야기가 전설로 남아 전하고 있다,도성 추축도의 각종 시설물은 현재 전해지고 있는 지명, 한양도성의 초기 도성 배치와 기록, 풍수 이론 등을 토대로 그린 것이다,

신도안 도성 추측도
신도안 도성 주초석 및 석재

석재의 크기는 대개 직경 1.2m × 1.8m의 것으로 궁궐 건축용 주촛들로 판단된다. 수량은 일괄 115개이다. 신도안이라는 명칭은 언제부터 생겼는지 분명하게 알 수는 없지만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의하면 태조가 즉위하여 계룡산 남쪽으로 도성읍 옮기려고 기초공사까지 하다가 물길이 일어서 중지하고 말았으며. 그 뒤 그곳올 신도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신도안 도성 주초석 및 석재
계룡산 신도안 주초석 및 석재는 1976년 6월 9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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