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 창건의 모태 홍련암 紅蓮庵
낙산사의 산내암자인 홍련암은 의상대 북쪽 3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당나라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의상대사는 강원도 양양 해변가 오봉산에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소문을 듣고 관음굴을 찾아오니 , 그곳이 곧 현재의 홍련암 자리라고 한다. 의상대사는 이곳에서 푸른 새를 만났는데 새가 석굴속으로 들어가므로 이상히 여겨 굴 앞에서 밤낮으로 7일 동안 지심으로 기도하며 바다 위에 홍련과 함께 솟아난 관음보살을 친견한 뒤 낙산사를 창건했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홍련암 전체가 강원도문화재자료 제3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범당 가운데 쯤에 조그맣게 마루를 뚫어 그곳으로 출렁이는 바닷물을 실감나게 볼 수 있도록 만든것이 특이하다.


의상대 義湘臺

낙산사에서 훙련암의 관음굴로 가는 해안 언덕에 있는 의상대는 의상스님이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와 낙산사를 지을때 이곳에 이르러 산세를 살핀 곳이며, 의상스님이 좌선수행처라고 전해지고 있다.
偶然飛錫洛伽樓(우연비석낙가루) 우연히 낙산사 누대를 노닐다가
湘老臺高洗客愁(상노대고세객수) 높고 오래된 의상대에서 객의 시름을 씻는구나
師去千年不復返(사거천년불부반) 의상대사 가신 지 천년이건만 돌아오시지 않아
但看山下碧波流(단간산하벽파류) 다만 산 아래로 훔러가는 푸른 물결만 바라보네
- 용암 체조스님이 쓴 등낙가 의상대(登洛加義湘臺)
체조스님의 활동 년대가 18세기 이므로 위의 시룸 통하여 적어도 이때까지는 의상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뒤 정확한 시기는 알수 없지만 아마도 근대 이전에 폐허가 되었던 듯하다.
의상대는 근대에 들어와서 1925년에 낙산사 주지 김만옹스님이 이곳에 정자톨 새로 지었으며, 만해 한용운스님이 의상대기를 지었다. 정자휼 지을 당시가 6월인데, 들보로 쓸 굵은 나무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거센 비바람이 몰아쳐 대 위에 있던 소나무 한그루가 넘어졌고, 스님은 그 소나무를 들보로 만들어 육각형의 정자률 완성했다고 한다,
예로부터 이곳을 의상대로 불러 왔으나 이때 정식으로 의상대라는 이롬이 붙었다.
그러나 1936년 폭풍으로 무너져 있다가 이름해 중건되었으며, 1974년에 강원도유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었고 1975년에도 한차례 중건되었다. 근래는 1994년 11월 강원도에서 의상대를 점검한 결과 기동 기와 등 구조체가 10도 가량 기울었고, 기둥이 씩는 혼적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등 붕괴의 위험이 있어 해체되었다가 1995년 8월에 육각정으로 복원되었으며 2009년 9월에 다시 해체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낙산사에서 홍련암의 관옴굴로 가는 길 해안 언덕 위에 있는데, 주위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면서 시인 묵객이 즐겨 찾는 곳이었으며, 지금도 낙산사률 찾으면 반드시 들러 보는 곳이 되었다.<낙산사 누리집 의상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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