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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향교와 서원/전라남도

[한국의 향교 전라남도] 구례향교

by Yeongsik_Im 2021.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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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5일간의 추석연휴중 19일은 아내와 함께 전라남도 여수를 다녀왔다. 다만 하루라도 셔터를 누르지 않으면 손이 근질근질하고 니콘의 묵직한 셔터소리를 듣지 않으면 허전하기에 현재 출장중에 시간을 내어 진행하고 있는 향교 탐방중 전라남도 지역의 향교를 몇군데 경유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다녀온 70여곳의 향교 중 전라남도 지역은 옥과향교 딱 한군데 뿐이었다.

남원에서 구례 순천 여수로 가는 국도 19호선 인근의 향교를 검색하여 곡성향교 - 구례향교 - 순천향교 - 여수향교 - 돌산향교를 경유하여 오동도와 여수 밤바다를 구경하고 돌아오는 코스를 택했다.

구례향교 홍살문과 하마비
구례향교 하마비

구례향교 하마비에는 과차개하마(過此皆下馬)라 쓰여 있고 흐면에는 건립일자가 새겨져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0호(1985년 2월 25일 지정)인 구례향교 외삼문 옆 안내문에는 구례향교(전교 김한섭)를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향교는 조선 시대에 지방관청에서 운영하던 공립 교육기관으로, 군단위의 향교는 50명이 정원이었으며 16세 이상의 양반 자제들이 공부했던 곳이다. 향교에 재학하는 동안에는 군역이 면제되었고, 소과에 합격하면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었다.
구례 향교는 원래 조선 중종 13년(1518년) 백련리 서북쪽에 지어졌었는데, 제사 때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피해를 입어 숙종 30년 (1704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향교 앞의 낮은 터에는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곳(강학 공간)이, 뒤쪽에는 어진 사람을 받드는 곳(존현 공간)이 자리 잡은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하고 있다. 강학 공간에는 외삼문과 명륜당, 동재와
서재가 있고, 존현 공간에는 내삼문과 대성전이 있다. 외삼문 앞에는 연못과 홍살문, 하마비(下馬碑) 등이 고루 갖추어져 있다.

구례향교 외삼문 정면 3칸, 측면 2칸의 솟을대문이다.

구례향교 명륜당

구례향교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자연석의 덤벙주초 위에 원기둥을 세웠다. 가구는 평5량으로 헛첨차모양의 우설과 초공을 가진 이익공양식이다. 지붕은 겹처마에 맞배지붕이며 풍판이 있다

구례향교 명륜당은 정면이 대성전을 마주하고 있다. 구례향교의 정문격인 외삼문을 들어서면 먼저 보이는 것이 명륜당의 뒤쪽 모습이다. 전학후묘의 배치일 경우 외삼문을 들어서면 대부분 명륜당과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위치하는데 구례향교처럼 대성전과 마주하고 있는 구조의 명륜당을 많이 볼 수 있다. 

구례향교 명륜당 뒤쪽
구례향교 동재
공사중인 구례향교 서재

구례향교 서재와 내삼문은 보수 공사중이었다. 공사시간은 2021년 8월부터 11월까지이다.

공사중인 구례향교 내삼문
구례향교 대성전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 2현(宋朝二賢) 및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대성전은 3칸의 맞배지붕이다.대성전 우측 건물은 배례각이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다듬돌 바른층쌓기한 석축 기단의 높이는 약 150cm이고 자연석의 덤벙주초 위에 민흘림이 약한 원기둥을 세웠다. 기단에 오르는 계단의 각석이 독특하게 ‘ㄴ’자형의 맞춤으로 다듬어져 있다. 가구(架構)는 2고주 5량으로, 공포는 주도에 두공담차를 얹었다. 기둥의 윗몸에서 헛첨차모양으로 살미가 나와 날카로운 우설을 이루고 촛가지 끝에는 연봉을 올렸다. 익공 위에 소루를 얹어서 외목도리의 행공담차를 받치고 있는 주심포계의 외 1출목 이익공식이다. 지붕은 겹처마에 맞배지붕이고 풍판이 있으며 양벽면의 가장자리를 보강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구례향교 [求禮鄕校] (두산백과)

강수당

소장하고 있는 전적은 99종 383책으로 유교의 경서와 그 해설책, 《일재집 一齋集》·《미암집 眉巖集》 등의 개인 문집, 필사본인 《완문절목 完文節目》·《향안 鄕案》·《유학안 幼學案》·《모성계안 慕聖契案》·《문중안 門中案》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유학안》은 각 면마다 작성된 유림명단으로 이 지방의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구레향교 홍살문 앞 250년 된 느티나무 1982년 12월 3일 보호수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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