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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무금정 잠계이전인기적비

by Yeongsik_Im 2022.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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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금정 無禁亭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옥산서원과 보물 제413호인 독락당을 돌아보고 난 후에는 꼭 들려 보아야 할 곳이 있다. 바로 무금정이다. 무금정은 독락당 주차장 앞에 있고 그 앞에는 잠계이전인기적비가 있다.

무금정은 옥산서원을 창건하는데 기여한 회재의 손자 구암 이준이 강동 모서 부근 두모연(천북면 모서리)에 지었다. 현재는 헐렸던 것을 후손들이 2009년에 독락당 가까이에 새로 지은 것이다.

무금정은 이준의 제호 부탁을 받은 당시 경주부윤 동악 이안눌이 지은 것이다.

소동파의 적벽부에 나오는 글귀로 청풍명월은 아무리 가지고 즐겨도 금하는 이 없다는 뜻을 취한 것 으로 무금정에는 이안눌의 시가 걸려 있다.

무금정
무금정 편액 우산 최채량이 썼다.
무금정중건상량문 이기석 손장호
무금정중건기 김창회 이지국
동악 이안눌의 시 제무금정

첨지 이준은 경주부 북쪽 14리 쯤 두모연가에 터를 정하고 정자를 세웠다.
산 기슭이 높게 위치해 들밖의 경치가 굽어 보이고 온 계림의 형세가 다 보였다. 술상을 차리고 나에게 정자의 이름을 처했다.나는 소동파"적별부의 강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은 가져도 금 할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도다 에서 無禁 두글자를 취해 이름으로 삼아 어떻습니까? 하니 주인이 좋습니다 했다.
거듭 나에게 현판에 걸 시를 청했다.

우거진 숲 성 밖엔 시내가 휘감아 흐르고
띠를 엮은 소쇄한 정자는 세속과 단절된듯
시내와 바람과 달은 월래 주인이 없건만
온 들판 구름과 산은 모두 그대의 것이라
맑은 물 곧장 내달려 바다로 흘러가고
좌우의 푸른 무지개는 보랏빛 노을과 구별되네
해질녁 피리소리에 고기잡는 아이들 돌아가고
홀로 앉아 물가의 백로 떼가 비상함을 바라보네
넓은 들과 곧은 산에 시내가 돌아 흐르고
이곳 높은 대는 고도의 형승이라
몇 곡조 긴 피리소리에 술 한통 제격이고
안개비가 가득한 하늘에 물새가 날아가네

 

잠계이전인기적비 潛溪李全仁紀蹟碑

무금정 앞에는 비각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잠계이전인기적비다.

조선 중기의 유생 잠계(潛溪) 이전인(李全仁)의 행적을 적은 비석으로, 1984년 5월 12일에 건립되었다. 팔작지붕 비각 안에 놓여 있으며, 성균관장 박성수(朴性洙)가 비문을 짓고 후손 이석근(李錫瑾)이 글씨를 썼다.

이전인은 1516년(중종 11)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의 서자로 태어났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 이언적이 정미사화(丁未士禍)에 연루되어 강계로 유배될 때 함께 동행하여 시중을 들었으며, 이언적의 학문과 행적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데 힘을 다하였다. 사후 예빈시정(禮賓寺正)에 추증되고 장산서원(章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잠계이전인기적비각

본관(本貫)여주(驪州)휘 (諱)전인(全仁)자(字)경부(敬夫)호(號)잠계(潛溪)중종11년丙子(1516) 7월 4일 출생 선조원년戊辰(156811월 5일終歲 증직(赠職) 通訓大夫禮賓寺正(통훈대 부예빈시정)회재(晦齋)이언적 선생(李彥迪先生)을 7년간 시봉하시다가적소에서 1553년 11월 23일 63세로 역책(易簀)하시니 천리절역(千里絶域에 사고무친(四顧無親이라 공이 홀로 진례치상(盡欞治喪)하고 운구하여 엄동설한)嚴冬雪寒)백여일만에 고향에 도착 달전에 안장하고삼년여묘(三竿廬墓)살이와 함에 치상을 마치고 회재 선생의 경천위지도덕(經天緯地道德)과 충군우국지충정(忠容憂餺之衷惰)을 백일하에 찬양코자 공이 부심 초사(腐心焦思)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상소문(上疏文)회재의 소저(所著)진수팔규(進修八親)를 상소하여 명종(明宗) 이 읽고 크게 감오(感悟)하여 1566년(명종 21년)에 회재 선생의 관작(官爵)을 13년 만에 복작케 하였다 공의 성효와 자품과 학문은 백세지후에도 가히 상모할 것이 없다 했으니 공을 추모하기 위해 사림 공의 로써 1780년(정조 4년)영천시 임고면 장산리에 장산서원을 건립하여 추모제향하였으나 대원군때 훼철되고 1984년 5월 12일에 기적비를 이 곳에 세우고 장산서원은 2006년에 옥산도화동 현위치에 복원하게되었다. 이 비(碑는 성균관장(成均館長) 밀성(密城) 박성수(朴性洙) 찬(撰)족 후손(族後孫) 석근(錫瑾) 서(書)이다.
잠계이전인기적비 潛溪李全仁紀蹟碑

잠계이전인기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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