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 향역에는 기장향교와 동래향교가 있는데 2022년 8월 8일 동래향교를 먼저 방문했다. 동래향교는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2013년 5월 8일 지정되었으며 동래구 명륜동에 위치하고 있다.전국의 향교를 방문하다 보면 대부분의 향교 인근에는 학교가 있는데 동래향교 옆에는 명륜초등학교가 있다.
먼저 동래향교의 특징이라면 건물배치에 있어 전체적으로는 강학공간을 앞에 두는 전학후묘의 배치라고 봐야 하지만 명륜당과 대성전이 일직선상에 있지 않고 제향영역이 우측으로 2열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동래향교 앞 도로변에 세워져 있는 하마비에는 대소인원하마비(大小人員下馬碑)라고 새겨져 있다. 대인 소인 모두 다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라는 뜻이다.
동래향교는 1392년(태조 원년)에 교육진흥책으로 전국에 향교를 세울 때 동래읍성의 동문 밖(동래고등학교 자리)에 세워졌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5년(선조 38) 동래부사 홍준이 중건한 뒤,여러차례 장소를 옮기면서 중건되었으며, 1813년 (순조13) 동래부사홍수만(洪秀晩)이 지금의 자리에 옮겼다.향교가 있는 이 곳의 지명인 명륜동은 향교가 이곳에 있기 때문에 유래된 것이다. 향교는 고려시대에 시작되어 조선시대 말까지 이어져 내려온 지방교육 기관으로 성현에 대한 제사와 유생에게 유학을교육하는교학기능과 함께 지방의 문화 향상을 도모하는 사회화교화기능도 갖고 있었다.
동래향교의 건물은 강학영역에 범화루, 명륜당, 동재와 서재가 있고 제향역영에 유교의 성현을 모신 대성전(大成殿)과 동·서무로 이루어 졌고 제향영역은 외삼문과 내삼문을 두어 구분했다. 유림회관 뒤쪽에 전사청과 관리사는 새로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동래향교 정면에 위치하는 남루(南樓)인 반화루(擊化樓)는 반룡부봉(擊龍附鳳), 즉 성인을 따라 덕을 이루고 임금을 받들어 공을 세우기를 원한다는 뜻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동래향교 경내의 문 가운데 건축적으로 가장 위계가 높은 2층 누문(樓門)으로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65호이다.
반화루는 1788년 동래부사 이경일이 남루를 중건하였고,그 후 1813년 부사 홍수만이 동래향교를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1815년에 반화루를 새로 건립하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공포는 익공계로서 1 출목 이익공식이다. 상부가구는 5량가이며, 지붕은 부연을 둔 겹처마의 팔작지붕이다. 지붕 4면의 처마는 모두 겹처마이고, 건물 네 귀의 추녀 위에 사래를 겹쳐 놓았다. 이익공 위에 봉두형 (風頭形)으로 새긴 보머리와 익공쇠서에 연봉(速峰)과 연꽃을 조각한 것에서 조선후기의 건축 수법을 볼 수 있다.
또한 익공의 형태와 초각 및 부재의 치목,결구수법 등에서 조선후기 향교 문루의 건축적 특경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지방 향교 문루 중에서는 다소 늦은 시기에 건축된 건물이지만 구조와 평면형식,입면구성 등에서 조선후기 향교 문루의 건축적 특경을 잘 보여주고 있는 등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건축 문화재이다.
반화루는 평상시에는 잠겨 있고 유림회관쪽의 협문을 통해 들어가야 한다. 경내를 들어서면 먼저 강학공간이 명륜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동재와 서재가 배치되어 있다.
또한 협문 우측에는 안내판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동래향청고왕록과 동래향교고왕록에 대한 안내문이다. 동래향교는 부산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98호와 제99호인 동래향청고왕록과 동래향교고왕록을 2019년 6월 부산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책들은 1985년 동래향교 김해진(金海振)전교가 향교의 고문서를 정리하면서 찾아낸 것으로 1989년 경성대학교에서 한글로 번역하면서 영인본으로도 간행하였다 .
동래향청고왕록에는 1605년부터 1805년까지의 동래향청 소장 자료 101 건의 목록과 1681년에서 1903년까지의 향청 관계 주요 문서 60건이 초록되어 있다. 또한 동래향청과 관련된 각종 서목(書目), 품목(稟目), 목록(目錄), 상소(上疏) 등이 수록되어 있다. 동래향청고왕록 내용 중 주목되는 것은 향청의 기능, 재정, 운영과 향임(鄕任)의 선임, 왜관과 관련된 동래(부산) 지역의 경제 등에 대한 기록이다.
동래향교고왕록에는 1782년〜1900년 사이의 동래향교 각종 건축 기록, 통문(通文), 추록(追錄), 등본(騰本), 품목(稟目, 축문, 서목, 상서 등 95건이 초록되어 있다. 이 고왕록의 주요 내용은 향교의 이전과 재정, 교임(校任) 선출, 개인 집안의 문서를 고왕록에 실어주기를 청하는 문서 등이다. 특히, 1784년 동래향교 이전에 관한 기록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책들은 조선후기 동래의 향청, 향교 연구 등의 기본 사료로 이용되고 있다. 현재 전해지는 향청과 향교 자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이 책들은 필사본으로서 유일한 자료이다. 그러므로 이 책들은 부산(동래)의 지역사와 지방교육 연구의 기초자료 로서도 매우 유용할 뿐 아니라 서지학적으로도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동래향교 명륜당은 1813년(순조 13)에 동래부사 홍수만이 현 위치로 동래향교를 옮긴 후 1815년(순조 15)에 건립한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가운데 넓은 대청을 두고 그 좌우에 정면 1칸, 측면 2칸 크기의 온돌방을둔 형태이다.
공포는 전면과 후면이 다른데, 전면은 외1출목 이익공식으로 앙서형의 초익공 상단에는 연꽃을 초각했으며,수서형의 이익공 하단에는 연봉을 초각했고 배면은 출목이 없는 이익공식으로 외부 익공은 모두 대량 뺄목의 길이에 맞추어 마구리를 직절(直切)한 단조로운 형태이다.
동래향교 명륜당은 익공의 형태와 초각 및 부재의 치목, 결구수법 등에서 조선 후기 향교 명륜당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동래 향교에는 종6품의 교수 1명이 있었고, 학생의 정원은 70명이었으며, 향교의 유지와 관리를 위한 학전(學田) 7결(結)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동래향교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익공식으로 겹처마 맞배집이고, 19세기 초 익공식 건축의 세부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서시동문생(書示同門生) 해수 김우정
단정히 앉아 몸을 단속하고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생각하며
잡념에 흔들지 말고 마치 고인을 대하듯 공손하라.
책에 대해서는 글이 간단하다고 하여 대충 보지 말 것이며,
말이 귀찮고 번거롭게 많다 하여 싫어하지 말라.전인의 득실은 함부로 비평할 수 없다.
내가 그 처지에 있지 않았고 또 그 당시의 일을 상세히 알지 못하니 어찌 가볍게 그 장단점을 거론할 수 있겠는가?글을 읽음에 있어서 귀중히 여기는 바는 그 글을 몸에 완전히 익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글을 읽지 않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글을 읽을 때는 이치를 철저히 밝히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작문은 이치를 밝히는 것을 주로 삼아야 한다.
학문은 스스로 깨침을 근본으로 삼아야한다."
우리 고을 스승 해수 김우정 선생의 가르침을 비에 새기다. 을미(2015년) 동래향교 전교 이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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