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예산 여행 중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면 먼저 김정희 선생 유적지를 추천한다.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추사 김정희 선생 유적지는 1980년 10월 23일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먼저 추사의 숨결과 옛집의 멋을 느껴볼 수 있는 추사고택을 소개한다.
원래는 서울 장동(현재 통의동)에 위치하였으나 집이 너무크다하여 월성궁 간신들이 영조 대왕께 상소하여 현재의 신암으로 장동에 있던 집을 뜯어다가 53칸의 집으로 추사의 증조부이신 월성위 김한신께서 건립한 곳으로 조선후기 대표적 실학자이며 서예가이신 추사 김정희(1786-1856)선생의 고택으로 80.5평이며 안채,사랑채, 문간채가 있다.
이 곳은 김정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김정희의 증조부 김한신은 영조대왕의 사위가 되면서 예산과 서울에 저택을 하사받았다. 예산의 집은 53칸 규모였는데,충청도 53개 군현에서 한 칸씩 건립 비용을 분담하여 지었다고 한다. 1976년에 그중 일부만 복원해 현재 고택의 모습을 갖추었다. 월성위궁은 서울의 저택으로 김정희가 관직 활동을 할 때 주로 지냈던 곳이다. 예산은 조상의 터전이 있는 곳이라 김정희는 성묘와 독서를 위해 자주 왕래하며 이곳에 머물렀다.
사랑채는 ㄱ자 남향집으로 온돌방이 남쪽에 한칸, 동쪽에 두칸 있으며, 나머지는 대청과 마루로 되어 있다. 대청 쪽으로 난 문은 모두 들어열개 문으로서 위로 활짝 열 수 있어 개방적이다. 손님을 접대하고 문학적인 유희를 즐기는 곳인 사랑채의 특성이 잘 살아있는 구조이다. 고택이 있던 김정희의 장서는 수만 권이었다고 하는데, 1910년 화재로 불타버렸다.
사랑채 화단 앞에 있는 김정희가 직접 제작했다고 하는 이 네모난 돌기둥은 해시계로 쓰였다. 건물 전체가 동서 방향으로 자리잡은 데 비해 돌기둥은 남북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앞면에 새겨진 석년(石年)이라는 글씨는 김정희의 아들 김상무가 추사체로 새긴 것이라고 한다.
안체는 ㅁ자 모양으로 6칸 대청에 안방,건넌방,부엌,광 등을 갖추고 있다. 6칸 대청은 흔치 않은 규모의 마루이다. 대청 대들보에는 김정희가 쓴 것으로 보이는 글씨가 붙어 있었다. 여성들의 생활공간인 안채는 밖에서 바로 들여다보이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안채 내부의 부엌은 난방용으로만 쓰이고 요리를 위한 부엌은 따로 두었다는 점이다. 이는 왕실 주택 구조로사, 왕실 사람인 화순옹주가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김정희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김상무가 세운 영당이다. 김정희의 평생의 벗 권돈인은 영당 세우는 일을 돕고 추사체로 추사영실(秋史影室)이라는 현판을 직접 썼다.
또한 김정희의 제자였던 이한철에게 대레복을 입은 김정희의 초상을 그리게 했다. 권돈인은 이 초상화에 찬문을 쓰고, 김정희를 추모하는 여덟 수의 시를 지어 김상무에게 주었다. 현재 초상화의 원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현판의 원본은 간송미술관에 있다.
가문 대대로 이용해 온 우물에는 김정희의 출생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민규호가 쓴 "완당김공소전"에 따르면 어머니 유씨가 임신한 지 24개월만에 김장희를 낳았다고 한다. 그 무렵 우물물이 갑자기 마르고 뒷산인 팔봉산의 나무들이 시들었다가 김정희가 테어나자 우물물이 다시 샘솟고 나무들이 생기를 되찾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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