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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전주202

전주 공익질옥 公益質屋 공익질옥 Public Pawnshop 公益質屋채권자가 사용가치가 있는 물건을 잡히고 자금을 빌려주면서 이자 취득을 업으로 하는 전당포를 두고 ‘질옥’ 이라고 했다. 공익질옥(公益質屋)은 국가 또는 공공단체가 보조하어 운영되는 형태로서, 사회정책 모델이라는 관점과 농토 수탈의 변형된 형태라는 평가가 공존한다.  1920년 전주는 사회정책 성격의 공익질옥 운영형태를 도입한 최초의 도시이며, 이후 1940년 지금 형태의 시설이 신축 개원하여 현재까지 남아있다. 가난한 시절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제3금융권 시설들이 모여 있던 골목이기도 하다. 2024. 8. 15.
전주 문학대공원 문학대공원은 2006년 전주 서부신시가지를 조성할 때 발견된 마전유적(馬田遺蹟)을 보존하기 위해 문학대 인근에 전체 면적 25,693㎡ 규모의 문학대공원이 조성되고  2008년 5월 개장한 전주시의 공원이다.문학대공원의 명칭은 공민왕 6년(1357)에 이문종이 고향에 내려와 노년을 보내며 성리학을 가르치며 많은 제자와 인재를 양성한 정자인 문학대에서 따온 것이다. 문학대공원은 공원 옆으로 만경강 지류인 삼천(三川)이 흐르며, 흥산로를 사이에 두고 문학대1공원, 문학대2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 내 문화유적으로는 복원된 마전고분군 1, 2, 3, 4, 5호분의 고분이 있으며  문학대를 비롯 황강서원, 추천대가 위치하고 있다. 문학대공원에는 미로정원, 무궁화원, 다목적구장, 케이트볼장, 배트민턴장, 인라인.. 2024. 8. 15.
전주 마랏마을 마전마을 이야기 전주 서부 신시가지는 행정구역상으로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마전(馬田), 척동(尺洞), 봉곡(鳳谷), 여매마을 일원에 해당된다. 이곳 효자동 일대는 서쪽으로 황방산과 천장봉 등의 산줄기가 이어지고 동쪽으로 삼천이 남북으로 흘러 만경강과 만나며, 나지막한 구릉과 물줄기 사이에는 드넓은 충적지대가 펼쳐져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었다고 한다. 마전마을은 척동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서부제1근린공원을 지나 황강서원으로 가는 길 우측에는 '효과 예의 마랏(마전)마을'이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2017년 7월 마랏향우회에서 세운 것이다.​마전이라는 마을이름 유래는 지형의 모습이 마치 "말이 밭에서 노니는 곳" 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서곡지구와 이어지는 우전로.. 2024. 8. 15.
전주 도심 속 공원 무더위 쉼터 마전숲공원 탄소광장 마전숲 공원은 전주시가 2008년 32억 원의 예산을 들여 조성했다. 시민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거주민들의 보건과 휴양, 정서생활 향상을 목적으로 도시공원 및 녹지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조성된 서부 신시가지 3호공원으로 전라북도청 도로 건너편에 조성된 도심 속의 공원이다.마전숲공원 탄소광장 유튜브 영상2017년 6월 제작된 상징 조형물은 원기둥 형태로 인간과 탄소가 서로 마주 보는 형국이다. 발뒤꿈치가 즐려 있는 것은 탄소산업에 대한 ㅇ니간의 도약을 의미하며 사람 우선, 인간 중심, 탄소와의 만남 등을 담고 있다. 육가 모양의 탄소 원자 구조가 원기둥을 타고 흩어 날리는 형상은 "탄소를 향한 인간의 도약이 이곳으로부터 시작되어 뻗어 나가다."를 나타내고 있다.석재는 탄소산업에 대한 오랜 염원을,.. 2024. 8. 14.
전주 마전고분군 全州 馬田古墳群 전주 마전 고분군 全州 馬田 古境群 Jeonju Majeon ancient tombs전주 마전 고분군은 지난 2006년 전주시 효자동 서부신시가지 조성 사업을 진행 중 문화재 발굴을 담당하던 (재)호남문화재연구원에 의해 삼국시대 고분군과 고군봉분이 발견됐다. 이로 인해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전에 해당하는 후기구석기시대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이 일대에 인간이 끊임없이 살아오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전주 일원에 우리 선조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를 폭넓게 이해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을 발견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전주 마전고분군은 마전IV구역 유적에서 확인된 삼국시대 고분문으로 본래 현재 전주 문학 초등학교 주변의 언덕에 있었으나 발굴조사가 완료된 이후 현재의 위치(문학대공원)로 이전.. 2024. 8. 14.
전주 경기전 ⑤ 전주사고 실록각 전주 경기전을 관람하며 대부분 전주사고를 멀리서 보고 그냥 지나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진에 보이는 우측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내부가 개방이 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고 올라 가셔서 꼭 관람 하시기 바랍니다. 전주가 지킨 높은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인류의 문화유산인 국보 제151호이자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곳입니다. 전주 경기전 유튜브 영상實錄閣(실록각)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는 전주사고는 경기전 정전의 동쪽에 임시로 어진을 모시던 별전이었으나 그 자리에 1991년에 복원된 것입니다. 조선시대 전기 4대 사고의 하나였던 전주 사고의 역사를 반추하고 서책을 보존하기 알맞은 2층 다락집 형태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부터 춘추관과 예문관.. 2024. 8. 13.
전주 호남제일문 전주IC를 나와 전주시내로 진입하는 기린대로에 세워져 있는 호남제일문은 길이 43m, 폭 3.5m, 높이 12.4m의 규모를 자랑하는 국내에서 가장 큰 일주문이다. 전주의 지역 특색과도 잘 어울리는 한옥으로 지어졌으며, 8차선 도로를 가로지르는 육교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전주로 진입하는 차들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일주문으로, 정면의 편액에 쓰여진 湖南 第一門(호남 제일문)이라는 글씨는 강암 송성용 선생의 작품이다. 호남지역 제1의 문이라는 의미와도 어울리게 웅장하고 화려하여, 전주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는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호남제일문은 한옥형의 전주 나들목과 함께 차를 타고 전주 시내로 진입하는 외지인들이 거쳐는 관문으로 1977년 5월 기존 4차선 진입로에 건립됐다. 이어 19991년 전국.. 2024. 8. 12.
전주 태평문화공원 구 전주연초제조창 전주 태평문화공원은 KT&G가 지난 2002년 전주연초제조창 폐창 이후 아파트 신규 공급사업을 추진하면서 관련법에 따라 단지 부지 3곳에 총 1만2126㎡규모의 개방형 근린공원을 조성하여 전주시에 기부채납한 것이다.태평문화공원은 '문화공원' 과 '어린이공원', '소공원' 등 3개 테마형 공원으로 구성됐으며, 전주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상징물로 꾸며져 있다. 문화공원에는 전주의 전통문화도시의 특성과 한스타일 역동산업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비빔밥 정원을 비롯해 전주역 상징물과 옛 연초제초창 굴뚝 이미지를 반영한 담배조형물, 대륜선 상징물, 대형분수 등이 갖추어져 있다.특히 공원 내 비빔밥 정원에는 전통병풍 형태를 모티브로 비빔밥 해설판을 한국어는 물론, 일본어, 중국어, 영어 등 4개 국어로 디자인하여 .. 2024. 8. 10.
전주 만원행복거리와 노송천 전주 팔달로 진북광장을 지나며 만원행복거리 안내 조형물을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그러나 좁은 길 양쪽으로는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주차된 차들이 많아 사실 주차하기도 쉽지 않았다.  '만원행복거리'는 전주시가 생태하천을 복원하기 위해 48년간 노송천을 덮고 있던 콘크리트를 걷어내면서 생긴 음식 특화 거리로  2012년 지정되었다. 단돈 만 원으로 전주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거리로 노송천 복원 구간·광장 주변 상가지역 일대를 '만원행복거리'로 지정했다. 지정 초반에는 '만원행복거리' 홍보를 위해 문화 공연, 플리마켓 형태 등 여러 행사가 개최됐고 노송천 상인회와 전주시가 상권 활성화를 위해 두 팔 걷고 나섰지만 소비자들의 발걸음은 어느 순간부터 뚝 끊겼다. 현재 '만원행복거리'는 한적하다 못해 적막감만 감돌고.. 2024. 8. 10.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전주 신흥고등학교 강당 및 본관 포치 조선시대 유생들의 교육 장소인 희현당(希顯堂) 터에 자리한 신홍고등학교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레이놀즈(Reynolds)목사가 1900년에 설립한 교육기관이다.학교본관은 리처드슨 여사의 지원을 받아 1928년에 지었으며 이를 기념하여 리처드슨홀로 정하였다. 본관이 1982년에 화재로 없어지고, 남아있는 입구의 포치(porch:건물의 현관 또는 출입 구의 바깥쪽에 튀 어 나와 지붕으로 덮 인 부분)를 수리하여 옛 본관의 모습을 기념하고 있다.강당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벽돌조 건물로 리처드슨 여사의 지원을 받아 1936년에 완공하였다. 강당의 명칭은 리처드슨  여사의 오빠인 미국 남장로회 전도국 총무 스미스 박사의 이름을 따서 에그버트 더블유 스미스 오디토리엄으로 정하였다.  강당 정 면은 현관을 도드.. 2024. 8. 10.
전주 일제강점기 흔적 다가교 석등 제79주년 광복절이 다가온다. 전주지역에 남아있는 전주 지역의 일제강점기 흔적들을 돌아보다 보니 아직도 곳곳에 많은 일제 잔재가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2023년 전주시에 따르면 친일 잔재물이나 식민 유제물은 모두 27건으로 시는 이중 13건에 대해 안내문과 단죄비 설치, 청산(제거), 교육활용 등의 방법으로 정비를 완료했다고 한다.전주의 중심 도로를 지나는 폭 25m, 길이 75m의 다가교에 일제 잔재가 남아 있음을 아시는 분은 드물 것이다.전주 관통로를 따라 예수병원으로 넘어 가는 전주천에 설치되어 있는 다가교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변천해 왔다. 조선시대에는 향교 학생들이 건너던 사마교로 불렸고, 다가교로 바뀐 이후에는 신흥과 기전학교 학생들이 서문교회로 가기 위해 건너던 신앙의 다리였다. 전주.. 2024. 8. 10.
전주풍남초등학교 강당 전라북도 등록문화재 전주 풍남초등학교는 1919년 11월 개교한 백 년이 넘은 유서 깊은 학교다. 1919년 전주여자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였고, 이후 1938년 전주풍남공립소학교, 1941년 전주풍남국민학교, 1996년 전주풍남초등학교로 시대에 따라 이름이 변경되며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함께했고, 개교 100주년인 2019년까지 37,01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전주풍남초등학교에는 80년 이상 보존되어 온 강당이 있는데 인근에 있는 전주고등학교 소강당과 2021년 신설된 전라북도 등록문화재 제1호와 2호로 지정됐다. 1936년에 건립된 풍남초등학교 강당은 벽돌 조적조 1층 규모로 내부 기둥없이 확 트인 개방공간 내에 무대가 있다. 현재 3칸 정도가 덧대어 확장되었으며, 화장 실 보수 등 재건축이 이루어져 지금도 강당으로.. 2024. 8. 7.
전주풍남초등학교 일제 잔재 봉안전 기단 최근 전주에 머무르는 몇일 동안 덕진공원 취향정을 비롯하여 전주초등학교 봉안전 기단, 공덕비 등 전주에 남아 있는 일제 잔재들을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전주풍남초등학교에 남아 있는 봉안전 기단을 소개한다.전주풍남초등학교 역시 100여년이 넘는 빛나는 역사를 가진 학교로 1919년 11월 6일 전주여자공립보통학교로 개교했다. 일제는 풍남초등학교에도 봉안전을 설치하여 학생들이 봉안전 앞을 지날 때마다 가장 먼저 이곳을 향해 3번 손바닥을 치면서 예를 올리고 등교하도록 했다. '어진영'이라고도 하는 봉안전에 경례하는 것을 게을리하거나 이를 해하게 하면 형법상 불경죄로 처벌 받았다.현재 봉안전 기단 위에는 1972년 11월 23일 할아버지의 날을 기념하여 위해 세운 우리할아버지상이 설치되어 있다. 1971년 7월.. 2024. 8. 7.
전주초등학교 요배소 터 봉안전 기단과 최초의 독립기념비 1897년 개교하여 전주지역 초등학교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전주초등학교 교정에도 일제는 어김없이 요배소를 설치했다. 요배소는 멀리서 바라보고 절을 하는 구역이라는 뜻이다. 전주초등학교는 1897년 전라북도 공립 소학교(양사재 설립)로 개교하여 1914년 전주제일보통학교로 개칭하여 현 위치로 이전했다. 1950년 4월 1일 전주국민학교로 1996년 전주초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올해로 개교 127년을 맞이한 전북 최초의 초등학교다. 일제는 신민화 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요배소 터에 돌로 몇 단의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조그만 집 형태의 봉안전을 지었으며, 바로 그 안에는 일본 천황의 사진을 걸어 놓고 학생들이 등교하면 가장 먼저 이곳을 향해 3번 손바닥을 치면서 예를 올리고 통과하도록 했다. 1.. 2024. 8. 7.
가장 오래된 명륜당 전주향교 명륜당 明倫堂 명륜(明倫)의 뜻은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의미로, 맹자 등문공편에, 학교를 세워 교육을 행함은, 모두 인륜을 밝히는 곳이다, 에서 유래한 것으로, 명륜당은 조선시대 인재양성과 학문부흥을 위하여, 유학을 가르치던 강당으로, 국민의 도의 정신과 사회정의를 부식하고 교화하는 근원이 된 건물이다. 향교의 명륜당은 유생들이 공부를 하던 강학당으로 명륜당에 걸려 있는 편액의 明倫堂 글씨는 1606년(선조 39)에 명나라의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쓴 것이 대부분 걸려 있다. 조선시대 관학의 성격을 띄고, 양반 자재 90명을, 정6품 교수 1명과 종9품 훈도를 두어 四書五經을 가르쳤다.전주향교 명륜당 건물은 전면 5칸 측면 3칸 일익공 맛배 가적지붕에, 전면은 교차무늬 창살문에, 눈썹천장에 도.. 2024.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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