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심도는 일본 본토와 가까워 일제시대 일본의 해군기지로 사용되었다. 그 흔적이 지심도 곳곳에 남아 있다. 해병 후 해방 후 진해 해군통제부 소유로 관리 전환되었고 현재는 국방과학연구소가 들어서 있다.
지심도 포대는 일본의 중국침략을 2년을 앞두고 계획되었으며, 1941 년 태평양전쟁 당시 양지암 기지와 함께 진해해면방비부대에 소속되어 미연합국과 일전을 준비하던 곳이다. 지심도 포대 설치는 1935년 VI월 30일 구 일본군 참모본부에서 포대건설계획서를 작성하면서 시작됐다.
1936년 4월 23일 일본육군축성본부는 지심도에 거주하고 있는 10여 가구를 강제 이주시키고, 같은 해 7월 10일 포대를 착공하기에 이른다. 일본군은 지심도 내에 4곳의 포대를 설치하는데. 45식 15밀리 캐논포 4문, 38식 기관총, 96식 측원기 등을 각각 배치했다. 총 예산 1 백46만5천원을 투여하여 군 막사,초소,경계표찰 등이 1938년 1 월 27일 완공되었다. 또한 지심도 포대를 보호하기 위해 1936년 7월 8일 지심도 헌병분주소를 설치하고 총4명의 인원을 배치하였다. 지심도 포대에는 일본군 1 개 중대 약 100여 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포진지 4곳은 모두 원형으로 동일한 형태인데 직경 18m의 방호벽을 만들고 그 안에 직경 4m의 포대를 만들었다. 방호벽의 높이는 1.5m 정도이고 남쪽과 북쪽에는 계단을 만들었다. 지심도 포대 4곳은 견고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서 현재도 원형 그대로 잘 남아 있다.지심도 포대는 한반도 전역을 일제의 병참기지화로 만들겠다는 계획에서 나온 것이다.
이 방향지시석은 방루나 발전소와 가까이 있는 곳으로 지심도의 주변 지역을 표시한 방향지사석이며, 서치라이트를 비추기 위해 설치되었다. 이 곳에는 총 6개악 지시석이 있었으나, 현재 제일 왼쪽으로 장승포방향(長承捕方向), 가덕도등대(加德島 燈臺. 진해), 절영도(紀敎島), 쓰시마 남단(對馬島)등 총 5개만 남아 있다. 방향지시석의 총길이는 5m이며, 석축 높이 5cm, 넓이 20X30. 기둥은 높이 30cm, 넓이 10X10이다. 또한 서치라이트 자리에서 방향지시석(우측)으로 35cm이며 석축과의 거라는 12cm이다. 현 위치와 전등소, 치라이트 보관소와 가까운 거라ㄴ에 설치되었으며,주변을 관찰하거나 작전 지구 내에 들어오는 선박을 감시하는데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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