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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혁명유적지 - 정읍 전봉준 단소 · 전봉준 고택

by Yeongsik_Im 2024.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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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군 대장 전봉준 단소 壇所

정읍시 이평면 창동리 산10-3에 위치하고 있는 전봉준단소(全琫準壇所)는 조소마을에 있는 전봉준선생고택에서 약 500m 떨어진 소나무 숲에 있다. 전봉준 장군은 1895년 3월 서울에서 처형되어 끝내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유해가 없는 허묘(虛墓) 이다. 단소는 주검이 없는 허묘를 말한다.

전봉준 단소는 1893년 11월 ‘사발통문 거사계획’ 은 물론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 된 1894년 1월 10일(양력 2. 25) ‘고부봉기’ 와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한 동학농민군 대장 전봉준을 기리기 위해서 ‘동학농민혁명 60주년’ 이 되는 1954년 11월 25일, 천안전씨 문중에서 설단하였다.


갑오민주창의통수천안전공봉준지단(甲午民主借義統帥天安全公琫準之壇)의 단비 이름은 당대 석학이자 사학자이셨던 故 김상기 박사가 지었다. 그 당시 동학농민혁명은 ‘동학란’ 이라 불리었고, 전봉준을 비롯한 주요 지도자들은 ‘동학당(東學黨)의 수괴(首魁)’ 로, 참여자들은 ‘반란군’ 이라 하여 '역적’ 으로 인식되던 시대였다.


동학동민혁명 100주년(1994. 5. 11)을 기념하고자 천안전씨 문중에서 ‘전봉준 장군' 유적보존회(遺績保存會)’ 를 구성하고 뜻있는 문중 사람들이 성금을 모아, 전봉준대장이 13세 때 지은 ‘백구(白鷗)’라는 한시와 운명전에 지은 ‘절명시(紀命詩)’ 
등을 돌에 새겨 설치 • 정비하였다.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500미터 떨어진 조소마을에 전봉준대장의 옛집(古宅)이 있고,   
150미터 북서쪽에는 선친(先親) 전창혁(全彰赫)의 묘소(墓所)가 있다.

甲午民主借義統帥天安全公琫準之壇
갑오민주창의문
갑오민주창의통수 천안전공봉준사적비

단소 우측에는 절명시와 백구시비등이 세워져 있다.

2013년에는 녹두장군 전봉준 단소에  세워져 있었던 석등이 철거되기도 했다.
당시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 스님이 일본식 가스가 석등이라는 문제를 처음 공개 제기했고 천안 전씨문중에서 확인하고 제거했다고 한다. 이후 건너편의 석등은 중국식인 걸로 밝혀져 또한 철거했다.

전봉준 고택

정읍시 이평면 조소마을에 있는 동학 농민군의 지도자였던 전봉준이 살던 남향 초가집으로, 1878년(고종 15년)에 지어졌다. 동쪽에서부터 부엌, 큰방, 윗방, 끝 방이 나란히 일자형으로 있는데, 이는 남부지방 일반 민가의 구조와는 다른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곳에서 전봉준은 농사일과 동네 서당의 훈장 등을 지내며 가난하게 살고 있었는데, 고부 군수 조병갑이 만석보를 설치하고 과중한 물세를 거두며 농민들을 수탈했다. 이에 분노한 전봉준은 1894년(고종 31년) 찬 여명의 화난 농민을 이끌고 고부 관아를 공격하여 조병갑의 잘못을 응징하였다. 이 사전은 동학 농민 혁명의 불길을 당기는 서막이 되었다.   

예로부터 정읍은 수질이 좋은 물이 풍부한 고장으로 알려져 왔으며 곳곳에 우물이 형성되고 각 마을에는 공동우물이 발달하여 왔다. 이 우물은 조소마을 주민들이 사용해 온 공동우물로 근대사의 여명을 밝힌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 장군이 이곳에 거주할 때 사용했던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는 곳이다. 

전봉준 장군 고택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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