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주년 광복절이 다가온다. 전주지역에 남아있는 전주 지역의 일제강점기 흔적들을 돌아보다 보니 아직도 곳곳에 많은 일제 잔재가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2023년 전주시에 따르면 친일 잔재물이나 식민 유제물은 모두 27건으로 시는 이중 13건에 대해 안내문과 단죄비 설치, 청산(제거), 교육활용 등의 방법으로 정비를 완료했다고 한다.
전주의 중심 도로를 지나는 폭 25m, 길이 75m의 다가교에 일제 잔재가 남아 있음을 아시는 분은 드물 것이다.
전주 관통로를 따라 예수병원으로 넘어 가는 전주천에 설치되어 있는 다가교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변천해 왔다. 조선시대
에는 향교 학생들이 건너던 사마교로 불렸고, 다가교로 바뀐 이후에는 신흥과 기전학교 학생들이 서문교회로 가기 위해 건너던 신앙의 다리였다. 전주 3 •·1만세운동의 뜨거운 현장이기도 했고, 1980년대 민주주의를 외쳤던 저항과 자유의 다리였다.
일제강점기 다가교는 다가산 정상과 옛 사직단터(현 기전대학)에 세웠던 전주 신사를 참배하는 통로로서, 대궁교라 불린 치욕의 다리이기도 했다. 1920년 홍수로 사마교가 유실됐고 1935년 일제는 총 길이 58m, 폭 7m의 교량을 다시 세웠다. 이름은 ‘대궁교’였다. 이 대궁교도 1935년 홍수로 인해 교량의 3분의 1이 유실됐다. 일제는 본격적으로 다가교를 대폭 확장, 1937년 길이 75m, 폭 7m의 교량을 건설했다. 이때 교량 4곳 모퉁이에 있는 현재의 석등도 함께 만들어졌다.
기둥 위의 석등은 등불을 켜 놓은 화사부(火舍部)로 신사참배의 길을 비추는 용도였지만 이 다리를 건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교육과 신앙, 독립과 민주주의의 염원이 담겨 있었다. 치욕의 상징이기도 한 석등을 굳이 남겨 놓은 것은 독립과 민주를 외쳤던 시민들의 염원을 기리고 아픔과 치욕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안내문은 2019년 8월 15일 3 • 1운동 100주년을 기리며 전주313위원회가 설치했다.
전주시는 1937년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다가교 석등이 일제잔재 논란이 일자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철거한 뒤 전주역사박물관에 전시하기로 했으나 도민 태반이 다가교 석등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아픈 역사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현재의 석등을 유지하고 그 옆에 일제 잔재물이었음을 알리는 표지판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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