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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향교와 서원/전라남도

염암향교 한국의 향교 157 전라남도 영암

by Yeongsik_Im 2024.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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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7~18일 전라남도 진도와 해남을 오가는 길에 무안향교 - 함평향교 - 진도향교 - 완도향교 - 해남향교 - 영암향교를 탐방할 계획이었다. 완도향교는 시간상 들리지 못했고 함평향교와 영암향교는 개방을 하지 않고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었다. 적극적으로 개방을 하고 있는 향교가 많아지고 있는데....함평향교와 영암향교는 언제 다시 올수 있을지 무척이나 아쉬웠다.

특히 영암향교는 대성전을 좌측에 두고 명륜당을 우측에 둔 좌묘우학의 병렬형 배치방식으로 건립된 향교로 더욱 아쉬웠다. 현재까지 방문한 좌묘우학의 향교는 합천향교, 밀양향교, 대구향교 등이 있다.

전주향교의 경우 일요일에는 개방을 하지 않았었으나 최근에는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일요일에도 개방을 하고 월요일에 휴관을 하고 있다. 월요일도 공휴일인 경우에는 그 다음날 휴관한다.

아래는 영암향교의 안내문이다. 안내문에 '영암향교는 왼쪽에는 강학 공간, 오른쪽에는 제향 공간을 둔 좌학우묘(左學右廟)의 형태이다' 는 잘못 쓰여진 것 같다. 왼쪽에는 자향 공간, 오른쪽에는 강학 공간을 둔 좌묘우학(左廟右學)의 형태이다 로 정정해야 한다.

영암향교는 조선 시대 유학자의 위패를 모셔 제사를 지내고, 영암 지역 사람들의 교화를 위해 국가에서 설치한 지방 교육 기관이다. 1420년(세종 2)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나, 관련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창건 연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원래 영암향교는 영보역이 있던 역리에 있었는데, 을묘왜변(달량진사변) 때 왜군의 주둔지로 이용되면서 시체 썩는 냄새가 심하다 하여 1603년(선조 36)에 교동리로 이건되었다.
1739년에 문묘를 중수하였고, 1874년에는 영암향교를 한 차례 중수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 보통 학교로 사용되던 중 건물 전체가 불에 탔으며, 1922 년에 명륜당을 중수하였으나 6 • 25 전쟁으로 모두 불탔다. 그 뒤 1951년 대성전, 1963년 양사재, 1969년 명륜당, 1971년 외삼문, 1976년 내삼문, 1986년에는 전사청 등을 중수하였다.영암향교는 왼쪽에는 강학 공간,오른쪽에는 제향 공간을 둔 좌학우묘(左學右廟)의 형태이다.
건물은 입구에 누각이 있고, 현유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학문을 갈고 닦는 공간인 명륜당, 학생들이 공부하고 숙식하던 양사재, 내삼문, 외삼문, 전사청 등이 있다.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맞배지붕이고,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양사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관리사 1동이 있다. 또 영암향교중건비(靈岩鄕校重建碑,1986와 군수들의 선정비 및 공적비도 세워져 있다. 향교 앞에 하마비(下馬碑)와 최근에 세운 것으로 보이는 호패형의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가 있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석전대제를 지내고 있다.
영암향교 안내문

영암향교 하마비

영암향교 하마비(靈巖鄕校 下馬碑)는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으나 향교가 기본적으로 조선 시대 지방 관학인 점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신의 하부에는 좌대(座臺)에 끼워서 세울 수 있도록 돌출부를 마련하였다. 하마비의 크기는 높이 106㎝, 두께 57㎝이다.

영암 향교 하마비는 오른쪽 윗부분의 일부가 훼손되었고, 장방형의 좌대 위에 세워져 있다. 1980년 향교 경내 하수도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외삼문 밖 연못으로 연결되는 곳에서 발견되어 영암 향교 홍살문 앞에 세워 두었다가, 2001년 12월 영암 향교 출입구 담장 밖 동쪽으로 옮겨 세우면서 서쪽 맞은편에 대리석으로 된 호패형의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라는 명문이 새겨진 하마비를 새로 세웠다.

입구 좌측에는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라고 새겨진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영암향교는 제향공간인 대성전과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좌묘우학으로 배치되어 있다.
영암향교 제향영역
대성전 내삼문
영암향교 대성전
영암향교 강학영역
명륜당
영암향교 만화루
영암향교 만화루

명륜당 앞쪽에 2021년에 세운 영암향교 개교 600주년 기념비가 보인다.

2021년 9월 9일 제막한 기념비는 6자 비석에 거북좌대와 용머리로 제작했으며, 비문은 본 향교 원로이신 일초 박준섭(89) 옹의 글과 글씨를 새겨 넣었다.

비문에는 영암의 지형소개와 1420년 세종2년에 최초로 창건된 후 누번의 외침과 병화, 6.25 전쟁으로 향교가 전소되고 기록이 소진되는 등 그동안 수많은 정변의 과정을 겪어오면서도 성현들의 고귀하고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오늘의 향교 모습으로 갖춰 오기까지 지난 600년의 역사가 담겨 있다.

영암향교 공적비군

영암향교 우측 담장 앞에는 영암향교중건비(靈岩鄕校重建碑)와 군수들의 선정비 및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뒤로 보이는 건물이 영암향교 유림회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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