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7~18일 전라남도 진도와 해남을 오가는 길에 무안향교 - 함평향교 - 진도향교 - 완도향교 - 해남향교 - 영암향교를 탐방할 계획이었다. 완도향교는 시간상 들리지 못했고 함평향교와 영암향교는 개방을 하지 않고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있었다. 적극적으로 개방을 하고 있는 향교가 많아지고 있는데....함평향교와 영암향교는 언제 다시 올수 있을지 무척이나 아쉬웠다.
한국의 향교 탐방 158번째 전라남도 진도향교를 소개한다. 진도향교는 1985년 2월 25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2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이번 진도향교의 사진들은 아이폰14 프로맥스를 이용하여 촬영했다.
전라남도 진도에는 고려시대에 향교가 세워졌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긴 하지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고, 조선시대 때 복군(復郡)한 이후에야 문헌을 통해 내력을 확인할 수 있다. 진도향교(珍島鄕校)는 조선 세종 20년(1438)에 창건하였다. 처음에는 읍성 동측에 세웠는데, 그 후 몇 차례 위치를 옮겼으며, 현종 8년(1667) 137대 이기형 군수 때 현재의 우치인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 275번지에 정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임진왜란 때에 왜병이 진도에 쳐들어오자, 당시 향교의 전교였던 김희남이 성현의 위패률 안전한 곳으로 옮기면서 명륜당 기둥에 “세상에 어찌 공자의 도가 없을 수 있겠는가?라고 써 붙여 놓았다. 그 뒤 왜병듈이 향교에 침입하여 불율 지르려다 이 글을 보고 경탄하며 그 옆에 "이 나라에도 충성스러운 인물이 있구나!"라고 써불인 다음 스스로 후퇴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박진원이 글을 짓고 박봉우가 썼으며 호남 삼강록에 올라있는 인물의 후손들이 삼강계를 결성하고 1931년 9월 비를 세웠다. 강헌계와 이보다 11년 앞선 1907년 4월 27일 발족한 삼강계는 서로 유사한 성격과 이름을 가진 진도의 대표적인 계라고 할 수 있는대, 서로 어떤 관계인지도 확실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진도군지 편저자 곽충로에 의하면 향교 앞 현 삼강비를 유중(儒中)에서 세운 것으로 보아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교동리에 위치하고 있는 진도향교는 비교적 경사가 심한 지형을 3단으로 정지(整地)한 후 앞쪽에 유생들의 교육 장소였던 명륜당과 기숙사인 동재, 서재를 두고 뒤편의 제향 공간에 대성전과 동무, 서무를 두는 산기슭이나 경사지에 건립된 향교의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방식을 따르고 있다.
진도향교 외삼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명륜당을 만나게 된다. 경사가 심한 산기슭에 건립된 진도향교 명륜당은 약 2m 정도높 이의 막돌 축대 위에 조영( 造營)되어 있다.
명륜당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집이다. 가구는 전, 후방 퇴주 사이에 안쪽으로 2개의 고주를 세우고 대량을 걸은 5량 형식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인 동재,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교직사로 이용되고 있는 서재가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전퇴를 두지 않는 맞배지붕집인 대성전은 2m 높이의 막돌 축대 위에 조영( 造營)되었다. 양박공면에는 바람막이 판을 달았고 처마는 전면을 겹처마로, 추면은 홑처마로 되어 있다. 구조는 5량 구조이다.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집으로 3량 구조이다.
진도향교 대성전 좌측으로는 단군전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의 향교와 서원 > 전라남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남향교 한국의 향교 159 전라남도 해남군 (2) | 2024.08.26 |
---|---|
염암향교 한국의 향교 157 전라남도 영암 (0) | 2024.08.20 |
함평향교 한국의 향교 156 전라남도 함평군 (0) | 2024.08.20 |
무안향교 한국의 향교 155 전라남도 무안 (0) | 2024.08.20 |
한국의 서원 광주 지산재 芝山齋 (0) | 2023.12.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