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한민국방방곡곡/대구경북

포항 갈평 피정의 집 · 남대영 신부 기념관 · 포항시 남구 오천읍 갈평리

by Yeongsik_Im 2024. 9. 4.
반응형

포은 정몽주 선생의 생가터가 있는 포항시 남구 오천읍 문충리에서 바로 옆 마을 갈평리에 1968년에 설립된 '갈평 피정의 집'으로 향했다.  문충리에서 갈평 피정의 집으로 가는  갈평리 마을입구에 세워져 있는 갈평리 표지석 옆에는 작은 송덕비가 하나 세워져 있어 마을 유래와 함께 소개해 본다. 

포항시 남구 오천읍 갈평리

포항시 남구 오천읍 갈평리(葛坪里)는 남쪽의 진전리, 북쪽의 용산리, 동쪽의 장기면 방산리와 산서리, 서쪽의 항사리와 경계를 이루는마을로 냉천을 따라 뚫린 929번 지방도의 좌우에 형성되어 있으며 갈평과 도리말 2개의 자연부락이 있다.

연일군고현면 지역으로 400여 년 전 인동장씨가 처음 정착하여 개척한 마을로 마을 주변에 칡넝쿨이 무성하였기 때문에 한자로 표기하여 갈림(葛林)이라 부르게 되었는데, 17세기 경 성진이라는 풍수가 이 마을을 보고 갈평(葛坪)이라 새로 지었다고 한다.

문충리와 이어지는 마을 입구 도로변에는 동쪽골짜기의 갈평지 건설유공자인 당시의 경상북도 지사 김인, 영일군수 김옥현, 해병포항기지사령관 준장 이영우 등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64년에 몽리민들이 세운 송덕비가 있다. 또, 이 마을 서북쪽이석골에서는 옛날부터 질 좋은숯들이 생산되어 연일현의 특산물로 이름이 높았으며 조정에 진상되기도 했다 한다.도리말 갈평 남쪽에 있는 부락으로 내가 이 마을을 한 굽이 돌아서 흐른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1968년설립된 갈평 피정의 집과 원각사 등의 작은 절이 있다. 뒷산에 백토 광산이 있었으나 수년 전부터 광맥이 끊어져 폐광이 되었으며, 사과 과수원이 많고 영지버섯 농장이 있는 점이 특징이다. 남동쪽 언덕에는 갈평 피정의 집 아래에는 1968년에 건설된 오천읍 상수도 정수장이 있다.

갈평리 입구 마을 표지석 옆에 갈평지 건설 유공자들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세운 송덕비 전면에는 한자로 아래와 같이 새겨져 있다.

 

頌德碑 송덕비

慶尙北道知事 金仁 경상북도지사 김인
迎日郡守 金玉鉉 영일군수 김옥현

海兵浦項基地司令部 海兵 准將 李榮雨 해병대포항기지사령관 해병 준장 이영우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기림로 1634갈평 피정의 집은 9월 1일 일요일에 방문했으나 문이 닫혀 있어 9월 3일에 다시 방문했다. 예수성심시녀회 갈평 피정의 집은 남대영(루이 델랑드  Louis Deslandes, 1895.6.13.~1972.11.17.) 신부가 설립한 예수성심시녀회 소속 수도자들이 연피정을 하는 곳이다. 수도자는 1년에 한 번 열흘 간의 피정 시간을 의무적으로 갖는다고 한다.

갈평 피정의 집은 29개(침상 56개)의 객실과 소그룹방 3개, 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 성당, 식당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최저 20인 이상, 그리고 대학생(청년) 이상 사용할 수 있으며, 본당 및 단체로 요청하실 때에는 적절한 프로그램으로 피정을 도와 준다고 한다. 피정의 집 TEL. 054-292-2354 / 010-4653-1883

 

포항 오천의 갈평분원은 예수성심시녀회의 설립자 남 루이델랑드 신부의 체취가 담겨있는 곳이다. 1963년경의 이 마을은 현대 문화시설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던 작은 산골이었다. 델랑드 신부는 이 불모지에서 제2의 착한어머니사업을 시작하였다. 선교사적 소명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던 델랑드 신부는 수녀들과 함께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하느님의 선하심을 갈망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기 위해 노력하였다.
1972년 11월 17일 새벽 5시, 델랑드 신부는 수녀들의 묵상지도를 준비하던 중 심장마비로 선종하였다. 갈평의 사제관에서 숨을 거두신 신부님의 뒤를 이어 수녀들은 이곳에서 착한어머니사업을 계속하였다. 1998년 1월 23일 피정의 집이 들어섰고, 갈평의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나, 설립자의 체취를 느끼게 하는 작은 사제관이 그대로 있다. 사제관은 2005년에 복구되었으며, 맞은편에 우뚝 들어선 피정 집에서 수녀들은 주님의 말씀과 설립자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새롭게 태어난다. 갈평은 설립자가 마지막 열정과 숨을 쏟아낸 장소인 만큼, 수녀들은 이곳에서 새 힘을 받아 새 출발을 한다.
예수성심시녀회 홈페이지

갈평 피정의 집
예수성심상과 남신부가 손수 쌓은 받침대

남대영 신부는 2013년 포항을 빛낸 여섯번째 인물에 선정되었고, 그가 말년을 보낸 갈평 피정의 집에는 신부의 유품을 전시관으로 만들어 진열해 놓았고, 선종 당시 사제관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포항철길숲에는 2023년 가톨릭 예술인 고수영 작가가 제작한 남대영 신부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대구에는 남대영 루이델랑드 신부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2015년 개관한 남대영기념관이 있다.

2023년 11월 17일 남대영 신부 입국 100주년을 맞아 포항 철길숲에 세워진 남댜형 신부 동상

남대영 신부 기념관 

남대영 신부 기념관은 갈평 사제관과 더불어, 신부님이 성당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2014년 리모델링해 새롭게 문을 연 역사관으로, 갈평에 머물며 세계를 향했던 루이 델랑드 신부의 선교사명을 만날 수 있는 유품과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1층은 루수나눔터이고 2층이 기념관으로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남대영 신부 기념관

남대영 신부는 1895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빠리니에서 출생,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으로 사제가 된 이듬해인 1923년에 선교사로 일제강점기였던 대한민국에 입국했다. 그는 식민지 조선에서 1935년 예수성심시녀회를 설립했으며, 1936년에 길에서 죽어가던 할머니 한 분과 고아 두 명을 받아들여 성모자애원을 설립했다.

이후 1950년에 현재의 포스코가 있는 송정 바닷가에 정착해 전쟁고아들을 위한 사회복지,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장애인 복지,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여성복지 등 다양한 지역사회복지를 실천했고 1968년, 포항제철의 건설로 인해 포항성모병원 뒤편으로 성모자애원을 옮긴 후에도 고통받는 주민, 고아, 병자들에 대한 나눔과 사랑을 이어 나갔다.

남대영 신부는 대한민국과 포항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다 1972년에 선종했다. 현재 예수성심시녀회 모원(포항성모병원 뒤편)에 잠들어 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문화훈장 국민장(1962년)’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최고 훈장(1969년)’을 수상했다.

하루 세번 삼종기도 시간을 알리며 갈평 마을을 깨우던 종
영사기와 타자기, 카메라 라이카 M3 카메라도 보인다.
옛 공동우물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