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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향교와 서원/경상남도

안의향교 한국의 향교 161 경상남도 함양군

by Yeongsik_Im 2024.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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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음력 8월 상정일(음력으로 매달 첫째 드는 정(丁)의 날)로 전국 234개 향교에서 추기 석전대제가 봉행됐다. 1986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석전대제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 공자의 인의와 도덕을 근본으로 한 학덕을 기리기 위해 술과 폐백을 성현의 신위전에 올리는 의식으로, 모든 유교적 제사 의식의 모범이며 가장 규모가 큰 제사이다.

 

오늘은 전주향교 석전대제에 참석하기 위해 포항에서 전주로 가는 길 함양 안의향교를 방문하기 위해 좀 일찍 출발하여 88고속도로에서 거창으로 나와 함양군 안의면  교북리로 향했다. 500여년 전 향교가 창건된 시기에 형성된 마을인 교북리는 일반국도24호선과 26호선이 만나는 곳에 있어 함양과 거창으로 이동하기에 편리한 곳이다. 마을 앞으로는 남강이 흐르고 뒤로는 황석산이 있으며 쌀과 딸기가 유명하다,

 

안의향교는 출장을 오가는 길에 몇번을 들려 보았으나 문이 닫혀 있어 갈땨마다 헛걸을을 했었는데 오늘은 좀 이른 시간이기는 하지만 석전대제 준비를 위해 문이 열려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도착해 보니 재천루의 문은 닫혀 있었으나 다행이 협문이 열려 있었다.

안의향교 입구 안의향교와 유도회안의지부 표지석
안의향교 하마비
안의향교 홍살문 우측 앞에 원래 홍살문 지주로 사용된 석재가 남아 있다.
안의향교 재천루
재천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문루이다.

안의향교에는 문루인 재천루와 대성전, 명륜당, 문루인 재천루, 제기고, 동서 양재인 화우재와 출곡재, 내삼문이  있고 강학 공간을 앞쪽에 두고 그 뒤에 문묘를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을 따랐다. 재천루부터 대성전까지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었다.

 

안의향교는 1983년 8월 1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6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안의향교 배치도
내삼문
석전대제나 분향례를 봉행할때는 향교의 모든 문을 활작 열어 둔다.
대성전

안의향교는 경상남도에서 보기 드물게 완만한 평지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대부분 전학후묘형이 경사지에 배치되는 점을 고려하여 대성전의 기단과 층계를 높게 쌓았다. 안의향교 대성전은 정면 3칸의 맞배지붕집이다.

안의향교는 1473년(성종 4) 8월 현감 최영(崔榮)이 공자의 사당을 건립하면서 창건되었다. 1474년에는 현감 신윤완(申允完)이 12명의 위패를 봉안하였고, 훈도(訓導) 김종유(金宗裕)[1429~?]가 유생들을 거느리고 4월에 낙성식(落成式)[건축물의 완공을 축하하는 의식]을 치렀다. 김종유의 아우인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이 창건한 향교에 대하여 기록한 기문(記文)[기록한 문서]인 신창기(新創記)가 전한다. 그러나 안의향교는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왜적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그러다 1607년(선조 40)에 남원(南原) 양선(梁譔)이 명륜당, 동재, 서재를 다시 건립하였다. 그 후에도 수차례 중수와 중건이 이루어졌다. 17세기 광해군 때는 정사침(鄭思忱)이 수리하고, 인조조에서는 이만정(李萬程)이 또다시 지었다. 1729년(영조 5)에 안의현이 혁파되었기 때문에 대성전에 모신 여러 위패는 모두 땅에 묻었다. 1736년(영조 12)에 안의현이 복립되면서 이현량(李顯良)이 성묘를 다시 손질하고, 여러 위패를 예전처럼 다시 봉행하였다. <디지털함양문화대전>

대성전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안자·증자·자사·맹자 등 오성, 주돈이·정호·정이·주희 등 송조 4현, 최치원을 포함한 동국 18현인 등 27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명륜당
명륜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서재 출곡재

동재에는  화우재, 서재에는 출곡재 편액이 걸려 있다.동재인 화우재는 정면 5칸의 맞배지붕으로 가운데 1칸은 대청, 양쪽 2칸은 방을 두었으며, 서재인 출곡재는 정면 4칸의 맞배지붕으로 3량 구조의 민도리집이다. 

제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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