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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전주/온고을 구석구석

전주한옥마을 선비길 남안재 · 남양사 · 전주향교 사마재

by Yeongsik_Im 2024.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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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와 길을 걷다

전주한옥마을에는 선비들이 살았습니다.

효를 위해 입신양명을 버린 월당 최담부터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불리는 간개 간우와 그의 제자인 삼재까지, 특히 일제강점기 한옥마을은 선비들의 집합소였습니다. 역사의 순간마다 삶의 참 모습을 보여준 이들의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곳이 바로 선비길입니다. 

 

전주향교 만화루 앞 길 건너편 좌측에는 '선비와 길을 걷다'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1900년대부터 일제에 항거하려는 전국의 선비들이 교동 일대에 모여 들면서 형성된 전주한옥마을 중심에는 삼재(금재 최병심, 고재 이병은, 유재 송기면) 를 비롯한 대학자 간재 전우(艮齋 田愚)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뜻을 새기기 위해 2014년 1월 전주시에서 이 표지석을 세웠고, 앞면 글씨는 송하진(당시 전주시장)이 썼습니다.

사마재와 남안재 입구 골목길
사마재

전주향교 계성사 좌측 뒷편 산기슭에는 사마재와 그 뒤로 남안재, 그리고 남양사가 있습니다.

사마재는향교 교육을 마치고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생원과 진사들이 모여 공부하던 곳으로 전주 지역의 우수한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학문과 인격을 수련하던 곳이었습니다. 전주향교지 「전주생진록 사마재소장안」에는 조선 태종 때부터 사마재에서 공부했던 생원과 진사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안재 입구에는 전주한옥마을이야기 남안재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남안재 뒤로 보이는 건물이 남양사다.
남안재의 주련 글씨 강암 송성용 선생이 썼다. 사진은 전주한옥마을역사관 전시품 촬영

사마재 뒷편에 있는 남안재는 고재 이병은 선생이 지은 서당으로 그는 남안재를 중심으로 그는 제자들과 함께 일제에 항거하며 조선 유학을 지켰습니다. 1930년대 고향인 완주군 구이면 두현리에서 서당으로 쓰던 한옥을 옮겨온 것으로 "정성과 공경은 하남의 정자에게 마음을 두고, 폭넓음과 간추림은 신안의 주자에게 배우기를 원한다,"라는 글귀에서 따온 것입니다. 

고재 이병은
면와 이도형

고재는 간재 전우의 제자로 간재문하의 학풍을 선도하였고 의리를 소중히 하는 강인한 서비정신으로 일관된 일생을 보냈으며, 조선 유학의 불씨를 되살리고 위기에 처한 전주향교를 지켜낸 든든한 버팀목으로 활동했습니다. 해방과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전주향교를 지킨 일입니다. 전주향교 제2대 전교를 지낸 그의 아들 면와 이도형도 그 일의 선봉을 섰습니다.

 

남안재 뒤편 조금만 오르면 고재 이병은 영정을 모신 ‘남양사’가 있는데, 이곳은 1966년 고재 제자들이 대나무 숲을 개간해 지은 사당으로 개인을 모시는 사당으로 전주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습니다. 

남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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