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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만월당

by Yeongsik_Im 2024.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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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수승대를 지나 월성계곡으로 가는 길 국도 37호선과 지방도 1001호선 교차되는 삼거리 북상면사무소를 지나 북상교를 건너면 우측으로 용수막회관 옆에 기와담장으로 둘러 쌓인 건물이 보이는데 고택인가 했더니 만월당(滿月堂)이라는 곳이었다. 만월당 정종주가 1614년에 건립한 건물로 멸실되었다가 1786년(정조 10)에 중건된 가옥이다.

 

만월당은 이곡의 형태가 조선 시대 후기의 양식이 보이고 있어, 이 무렵 대대적인 중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 2005년에 대문채 보수, 2007년에 전면 해체 보수 공사가 있었다. 2001년 12월 20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7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만월당 대문채
만월당 대문채 상량

이 고가는 만월당 정종주(滿月堂 邵宗周, 1573〜1653)선 생을 기려 현종 7년(1666)에 세운 건물로 1786년에 중건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 구조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규모로 가운데 2칸에 대청을 두고 좌, 우로 1칸씩 방을 들인 평면형식이며 맞배지붕이다. 장식없이 소박하면서도 간결한 가구기법 등 중건 당시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 조선 후기의 건물이다. 만월당은 거창의 대표적인 문인들의 교유(交遊)의 장소가 되어 향토문화의 뿌리를 내리는데 기여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분들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장소이다. <만월당 안내문>

만월당

만월당에는 정면 우측에 ‘만월당’이라는 편액과  좌측에 ‘팔완당’이라는 편액이 같이 걸려 있다. 만월당은 정종주(鄭宗周)[1573~1653]가 현재의 자리에 건립하였지만 팔완당은 만월당의 조부인 팔완당 정몽서(鄭夢瑞)가 16세기 중엽에 건립한 건물로 건립 장소는 현재의 터가 아니라 남쪽에 위치한 경상남도 거창군 고제면 농산리 204번지였다. 그러나 팔완당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고 만월당도 멸실된 것을 1786년(정조 10)에 후손들이 만월당 터에 각각의 건물을 중건하지 못하고 하나의 건물로 합건(合建)하여 중건하였다. 그래서 당호가 2개가 된 것이다.

만월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평면은 중앙에 마루 2칸을 두고 좌우에 온돌방을 1칸씩 배치한 중당 협실형이며 정면과 배면에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정면의 쪽마루에는 난간을 설치하여 누각의 이미지를 나타내었다. 청방간에는 분합문(주로 대청과 방 사이 또는 대청 앞쪽에 다는 네 쪽 문)을 설치하지 않아 공간의 변화가 적은 것이 특징이다.

 

기단은 자연석으로 외벌대로 쌓았으며 초석은 자연석 덤벙 주초이고 기둥은 모두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다. 공포 양식은 초익공 형식이며 결구 방법은 기둥 위에 사괘를 틀고 보아지[기둥머리에 끼워 보의 짜임새를 보강하는 짧은 부재]와 창방을 결구한 다음 주두를 올렸다. 이 주두 위에 보를 놓고 장여와 도리를 얹어 결구하였으며 장여와 창방 사이에는 소로를 끼워 넣었다. 보아지의 형태는 외부는 만개한 연꽃 모양으로 초각하였고 내부에는 꽃봉오리 모양으로 장식하였다.

 

초익공은 보머리에 붙여 놓았는데, 봉두를 초각해 놓았다. 상부 가구는 도리가 다섯 개인 오량가로 종보[대들보 위의 동자기둥 또는 고주(高柱)에 얹히어 중도리와 마룻대를 받치는 들보] 위에는 동자 대공[들보 위에 세워서 마룻보를 받치는 짧은 기둥]을 놓고 중도리를 올렸고 종보 위에는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지지하였다.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이며 기와는 한식 기와를 사용하였는데 암수막새를 사용하였다.<디지털거창문화대전 참고>

만월당 기문
정한용유적비

효우사 孝友祠

만월당 대문채 맞은편에는 2007년에 건립한 진양 정씨 문중 사당인  효우사가 있다.  효우사(孝友祠)와  우측에 孝友祠廟庭碑(효우사묘정비)가 세워져 있다.

효우사
용수막마을 표지석과 용수막회관 건립기념비

만월당이 있는 용수막마을은 본래 뒷산인 윤덕봉(潤德峰)이 용의 형상이며 마을 남쪽에 하천이 흘러 붙여진 이름인데, 농산리의 가장 큰 마을이어서 농산 마을로 불리다가 1995년에 다시 옛 명칭을 되찾았다.

 

농산리에는 하천변을 따라 나투어 농장, 민들레울 오토 캠핑장이 있으며, 강선대 마을 쪽에 보물 제1436호인 거창 농산리 석조 여래 입상이 있다. 교통로로는 하천의 북변을 따라 조성된 덕유 월성로가 있어 동쪽 갈계 마을에서 서쪽 창선 마을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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