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에서 서북쪽으로 3km 지점에 충주사람들에게 추억을 심어주는 2008년 명승으로 지정된 탄금대가 있다. 오대산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탄금대 북쪽으로 유유히 흐르고 속리산에서 발원한 달천강이 한강과 합수되는 지점에 자리한 탄금대는 원래 대문산이라고 불리워 오던 해발 100m 정도의 나즈막한 산으로 그 밑에는 남한강과 면서도 기암절벽에 송림이 우거져서 경치가 좋은곳이다. 악성 우륵이 망국의 한을 달래며 가야금을 타면서 제자들에게 노래와 가야금, 춤을 가르쳤다는 곳이며, 임진왜란 때 팔도 순변사 신립장군이 순절한 곳이다.


충주를 대표하는 향토가요로 37년 동안 시민의 사랑을 받아 온 `탄금대 사연` 노래비는 2005년 6월 29일 탄금대 야외음악당 앞에 세워졌다. 지난 1968년 당시 KBS 충주방송국에 근무하던 이병환 씨가 글을 쓰고 향토작곡가 백봉 씨가 곡을 붙인 `탄금대 사연`은 충주 지역의 대표적 관광지인 탄금대를 소재로 한 노래로 40년 가까이 충주의 대표적인 향토가요로 애창돼 오고 있다.


충주 충혼탑 · 충장공 신립장군과 팔천고혼위령탑
충주의 명승 탄금대에는 충혼탑이 하나 서 있다. 한국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순국한 충주 출신 전몰장병과 경찰관, 군속, 노무자 2838인의 넋을 추모하고자 1956년에 세운 것으로 매년 6월 6일 현충
supermans.tistory.com


권태응 감자꽃 노래비 충주 탄금대
충주의 명승 탄금대에 들려 열두대로 가는 길, 먼저 한국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순국한 충주 출신 전몰장병과 경찰관, 군속, 노무자 2838인의 넋을 추모하고자 1956년에 세운 충주 충혼탑을 만나게
hyanggyo.tistory.com


탄금대기 彈琴臺記


이 비석은 충주의 역사와 지리, 인물과 자연환경을 예찬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비석의 높이는 183cm, 폭은 66cm, 두께는 34cm인 화강석으로 1954년에 세워졌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곳이다. 또한 땅이 기름지고 교통의 중심지 이기 대문에 삼국시대 대부터 세 나라가 서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세력을 다투었다.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두에는 신라의 특수 행정 구역이었던 오소경중 하나인 중원소경이 설치되는 등 이처럼 충주는 예 부터 중요한 지역으로 여겨져 왔다.
또한 충주는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의 고장으로, 뛰어난 음악가 우륵, 대문장가 강수, 명필 김생 등이 배출되어 이 고장의 문화 예술을 꽃피웠으며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중 탄금대 전투 때 활약했던 신립, 병자호란 때 활약했던 임경업 등이 배출된 충절의 고장이기도 하다.
이 비석은 이 같은 과거의 영예로움을 이어 받아 문화의 원천이 되고 인재가 모이는 고장이 되려면 지역 주민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올바른 전통이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비석의 글은 최남선이 썼고, 글씨는 서예가 김충현이 쓴 것이다.
탄금정 彈琴亭

충주 탄금정은 본래 충청북도관찰사 김석규가 1903년(고종 40) 충주시교육청(현 충청북도 충주교육청) 자리에 상연당이란 연못 안에 석가산을 쌓고 그 위에 육각정을 세워 천운정이라 이름 지은 곳이다. 김석규는 이곳에서 매년 7~8월 유생들과 더불어 풍류를 즐겼다. 그러다 1906년(고종 43)에 이곳에 충주공립보통학교를 건립하게 되면서 운동장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상연당을 메우는 바람에 육각정을 사직산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 후 1955년 충주읍장 박승두가 육각정을 탄금대로 옮겼다. 1976년 6월에는 목조 건물인 육각정이 노후화되자 현재 자리에 콘크리트로 2층 정자를 지었고, 육각정인 천운정은 호암지 동산으로 옮겨 다시 복원하였다. <디지털청주문화대전 탄금정 참고>


탄금정은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정자로 면 1칸, 측면 1칸의 콘크리트 2층 정자인데, 1층에는 방형주, 2층에는 원형주를 세워 초익공 계통의 공포(栱包)를 구성하였다. 기둥 상부 주두 밑에는 조선 중기부터 이용되기 시작한 안초공으로 짜여 있어 특이하며, 창방으로 결구된 주칸에는 화각반을 1구씩 배치하여 주심도리 장여를 받쳤다. 우물천정으로 된 2층에는 난간을 돌려 전망대로 이용되고 있으며, 지붕은 겹처마 4모 지붕을 이루고 있다. <디지털청주문화대전 탄금정 참고>
탄금정에서 강쪽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탄금대에서도 가장 절경인 열두대에 이른다. 유유히 흐르던 강물은 질펀하게 호반이 되어 물안개를 일으키고, 서번 박재륜 선생의 글에 죽사 박충식선생의 글씨로 세운 '신립장군 순국지기"비가 외롭게 서 있다.

임진왜란 때 팔도 도순변사 신립장군이 조총으로 무장된 십수만의 왜적을 창과 활로 무장한 훈련되지 않은 팔천 군사와 함께 최후의 일각까지 싸우려면 배수진 전법이 아니면 불가하다는 전략을 세우고, 이곳 열두대에서 병사들과 함께 싸우다 47세를 일기로 애석하게 순절한 곳이다. 부여의 낙화암이 금강변에 있듯이 탄금대 열두대가 남한강변에서 분위기를 갖게 한다. 열두 대란 가야금이 12현 열두줄이기에 "열두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고, 또다른 하나는 신립장군이 왜병과의 전투에서 군사들을 독전하면서 열기에 달아오른 활시위를 강물에 식히려고 이 대(절벽)를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다는 전설이 숨어 있기도 한 곳이다. 이 곳 열두대를 오르내리는 지금의 콘크리트 계단을 12단으로 만든 것도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대한민국방방곡곡 > 충청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권태응 감자꽃 노래비 충주 탄금대 (1) | 2025.03.24 |
---|---|
충주박물관 충주중앙탑사적공원 (1) | 2025.03.24 |
충주 중앙탑 · 국보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 (0) | 2025.03.22 |
충주 창동리 오층석탑 · 약사여래입상 (1) | 2025.03.21 |
국립청주박물관 Cheongju National Museum (5) | 2025.03.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