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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향교와 서원/전라남도

[한국의 향교 전라남도] 화순 동복향교

by Yeongsik_Im 2022.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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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첫날, 육군의 3대 유격장으로 알려져 있는 동복유격대 취재가 있어 좀 일찍 출발하여 인근에 있는 동복향교(同福鄕校)를 먼저 들렸다. 동복향교는 유격훈련중 도하 및 해상훈련등이 실시되는 만경대 인근에 있어 가까운데 올 때마다 시간이 없어 돌아보지 못했었다. 오늘에서야 동복향교에 올라 본다.

화순군에는 화순향교, 능주향교, 동복향교가 있는데 동복향교는 조선전기에 창건된 소설위 향교로 동복면 연월리 월송마을 뒤편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월송 마을은 동복 향교가 자리 잡은 향교등을 북서쪽에 두고 반달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향교답을 경작하면서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마비 그리고 비석들은 향교의 중수와 중건에 공을 들인 현감의 흥학비, 향교 교임들의 공적비, 모성비 등이다.

차량으로도 가파른 경사의 시멘트 도로를 꽤나 올라가야 한다. 대형버스는 올라갈 수 없고 승합차 정도는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외삼문 좌측으로 몇대의 주차공간이 있으나 주차는 하마비 인근의 도로 한쪽을 이용하는 것이 좋고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된다.

동복향교는 경사가 심한 높은 언덕에 건립되어 있어 외삼문 - 명륜당 - 내삼문 - 대성전으로 연결되는 구간마다 많은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외삼문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25호인 동복향교는 세종 27년(1445) 동복현감 하강지 때에 현재의 위치인 연월리에 창건되었다. 1655년(효종 6) 관아에 불이 나서 객사에 모셔진 전패가 소실되는 사건이 일어나 동복현이 없어질 때 향교도 함께 폐교되었으나 1664년(현종 5)에 현이 복구되고 향교도 복교되어 1701년(숙종 40)에 현의 남쪽 독상리로 옮긴 후 1756년(영조 32)에 다시 처음의 위치인 연월리로 옮겨 복원된 것이다.

이렇게 동복향교는 창건 이래 한 번의 폐교와 세 번의 이건을 거듭하였으며 다른 향교들과 마찬가지로 중수와 보수, 중건을 거듭하면서 유지되어 왔다.

외삼문을 들어서 고개를 들어보면 우뚝 솟은 듯 높이 세워져 있는 명륜당이 나온다. 명륜당의 정면은 대성전을 마주하고 있다. 명륜당 좌측 건물은 1991년에 신축한 화장실이고 그 옆에 서재가 자리잡고 있다. 우측으로 보이는 건물이 동재인 경묘재이다.

명륜당 측면

동복향교는 경사진 언덕에 지어져 앞쪽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을,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두는 일반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방식을 따르고 있다.

1903년에 화순 군수 김기중의 주선으로 중수되었고 1935년에는 중건되었는데 당시 향교 건물로는 대성전, 동무, 서무, 명륜당, 동재, 서재, 사마재, 고고재(顧顧齋), 고직사 등이 있었으나 1950년 6·25 전쟁의 와중에 전소되었다고 한다.

1959년에 정부와 동복 지역 유림들의 노력으로 대성전과 내삼문만 복원되어 예전의 향교 모습을 겨우 회복하였으며, 1988년 동재인 경모재와 서재인 양사재가 복원되었고, 199l년 화장실 신축, 1996년 내삼문 계단, 1997년 담장 및 외삼문 계단, 1998년 대성전 보수, 1999년 명륜당 복원을 하여 겨우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명륜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서재 양사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동재 경묘재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삼문에서 촬영한 명륜당
내삼문
내삼문은 정면 3칸의 솟을대문으로, 막돌초석위에 네모기둥을 세우고 납도리를 걸어 놓은 3량 구조로서 중앙칸 판장문 위로는 홍살을 꽂았다.
복향교 대성전은 벽체보수공사중이었다.
대성전은 전퇴를 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건물이다.
벽체보수공사중인 대성전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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