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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부석사 ②

by Yeongsik_Im 2023.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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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름다운 사찰 영주 부석사의 두번째 방문은 2023년 11월 11일, 단풍 시즌에는 좀 늦었지만 부석사는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첨부된 사진들은 DSLR과 함께 아이폰14로 촬영했다.

신라 문무왕 16년(676) 해동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사 왕명으로 창건한 부석사는 우리나라 화엄종의 스수사찰(首寺刹)아다. 초조인 의상 이래 그 전법 제자들에 의해 지켜져 온 중요한 사찰로 의상은 676년 부석사에 자리잡은 뒤 입적할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았고 그의 법을 이은 법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아름다운 절 영주 태백산 부석사

10월의 마지막을 몇일 앞두고 찾은 부석사의 가을은 정말 아름다웠다. 일행들과 다음 일정이 있어 오전에 일찍 둘러보았는데 일주문을 지난 시간이 8시 40분경이었다. 사진을 촬영하기에 적절한

hyanggyo.tistory.com

부석사 무량수폭포 포토존

무심코 부석사로 향하는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무량수폭포를 지나칠 수 가 있다. 무량수폭포를 보기 위해서는 부석사 표지석이 있는 주차장 바로 앞쪽 샛길로 내려가면 된다.

부석사 무량수폭포

부석사 무량수폭포

 

영주 부석사 불교문화유산안내소 입구에는 "문화재보호법 개정안 시행에 따라 문화재 관람료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부석사 당간지주 보물 제255호

 

부석사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다다르기 전 왼편 중턱에 세 있는 높이 4.8m의 당간지주는 부석사 창건 당시 세워진 신라시대의 석조 유물이다. 1300여년전의 이 당간지주에는 화엄종찰을 알리는 깃대와 깃발이 꽂혀 있었겠지만 지금은 한쌍의 돌기둥만이 남아 있다.

부석사 천왕문

 

부석사의 주불전인 무량수전으로 가기위해서는 범종각으로 오르는 계단과 이어지는 안양문으로 오르는 약간 경사가 있는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우측에 길이 있지만 그리 많지 않은 계단이니 천천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경내의 건물들과 소백의 연봉들을 감상하며 오르면 된다.

안양문과 무량수전.
부석사 안양문

 

무량수전 앞에 있는 안양루는 정면 3칸 ‚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무량수전과 함께 이 영역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건물에는 위쪽과 아래쪽에 달린 편액이 서로 다르다. 난간 아랫부분에 걸린 편액 은 ‘ 안양문 ’ 이라 되어 있고 위층 마당 쪽에는 ‘ 안양루 ’ 라고 씌어 있다. 하나의 건물에 누각과 문이라는 2중의 기 능을 부여한 것이다. ‘ 안양 ’ 은 극락이므로 안양문은 극락 세계에 이르는 입구를 상징한다. 따라서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지나면 바로 극락인 무량수전이 위치한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다.

안양루 목어
안양루

 

안양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엎드려 모여 있는 경내 여러 건물들의 지붕과 멀리 펼쳐진 소백의 연봉들이 한눈 에 들어온다. 아스라이 보이는 소백산맥의 산과 들이 마치 정원이라도 되듯 외부 공간은 확장되어 다가온다. 부 석사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이다. 그래서 예부터 많은 문인들이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소백의 장관을 시문으 로 남겼고 그 현판들이 누각 내부에 걸려 있다.

 

안양문을 통해 계단을 오르면 무량수전 앞에 부석사 석등이 버티고 있다. 석등 앞에는 석등의 부속물인 방형의 배례석이 현존한다.

부석사 석등 오른쪽 사진뒤로 보물 제249호인 부석사 3층석탑이 보인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 중 하나이며, 조사당벽화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부석사 성보박물관 안에 보관되어 있다. 무량수전 안에 봉안된 소조여래좌상은 진흙으로 만든 소조불상으로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다.

무량수전 편액

 

나무로 앉아 있는 모습의 골격을 만들고 그 위에 진흙을 붙여가면서 부처의 모습을 표현한 불상인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다른 사찰의 불상과 달리 법당 중앙의 정면이 아닌 무량수전 서쪽에 모셔져 있고 시선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배치에 대해서는 아미타여래가 서방정토에 계시기 때문에 서쪽에 모셨다는 설,인도나 중국의 석굴과 유사한 느낌의 공간감을 만들고자 의도했다는 설 등의 다양한 견해가 있다고 한다.

 

불상은 높이 2.78m의 크기로 우리나라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다. 부처에게서 품어져 나오는 진리의 빛을 표현한 광배는 불상 뒤편에 따로 나무로 만들었는데, 가장자리에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얼굴은 풍만하고 두꺼운 입술과 날카로운 코 등에서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손모양은 무릎 위에 올린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는 항마촉지인인데, 이러한 손모양은 석가모니불에서 많이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소조여래좌상이 있는 전각 이름이 극락정토에 머물면서 불법을 설파하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무량수전이라는 점과 부석사 ‘원융국사비’에 “좌우에 다른 보처보살을 모시지 않고 아미타불 한 분만 모셨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미타불임이 확실하다.​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불상 양식을 이어받은 고려 시대 초기의 불상 양식을 알려주는 귀중한 불상이며, 웅장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져 예술적 가치도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안내문

 

부석사로 불리우게 된것은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어있지 않고 떠 있어서 '뜬 돌’ 이라 한데서 연유한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선달사 혹은 흥교사라 불리었다.

뜬돌

조선 영조때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위아래 바위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잇어 줄을 넣어 당기면 걸림없이 드나들어 또있는 돌임을 알 수 있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뜬 돌에는 뜰 부(浮)와 돌 석(石)자 浮石이 새겨져 있다
부석사 삼층석탑에서 내려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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