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에 학생회관 앞에서 우연히 보았던 덕진공원비가 떠올랐던 것은 얼마전 전북대학교 자연사박물관(구 중앙도서관) 앞에 있는 '향교재단기적비'를 보고 난 뒤었다. 근처에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이곳 저곳 공사가 진행중이라 못 찾고 돌아왔었는데 전북대학교 박물관 이종철 박사의 칼럼을 보고 이전된 것을 알았다.
덕진공원비는 기념비의 정체성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덕진공원과의 접근성에 기초하여 전북대학교 항공교육실습장 북편 공터로 이건됐다. 덕진공원과 전북대학교를 가로지르는 권삼득로 도로변이다.
덕진공원비 한쪽에 2005년 3월 1일 전북대학교박물관에서 세운 안내문에는 '덕진공원 기념비와 역사 바로 알기' 와 박기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덕진공원기념비는 덕진공원의 완공과 공원 건설에 공이 많은 사람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일본인 전주읍장 후지타니 사쿠지로가 1933년 3월에 세운 것이다. 그러나 이 비석은 일제강점기에 일제통치정책에 적극 앞장섰던 친일부역자 박기순의 공덕을 찬양하고 있는 일제의 잔재이다. 이에 박기순의 친일행적과 우리의 부끄러운 과거를 후세들에게 역사적 교훈으로 남기고자 이 안내문을 세운다.
박기순(1857~1935)은 전주 출신으로, 국권침탈 직후인 1910년부터 2년간 전북 여산군수를 역임하고 전주농공은행장, 중추원 참의, 조선박람회 평의원, 조산농회 도상임위원 등 각종 단체의 장과 임원을 역임하였다. 그 댓가로 일본 천황으로부터 독배와 공로퍄 그리고 대례기념장을 받는 등 부와 명에를 누렸다. 이러한 사실때문에 2002년 3·1운동 기념일에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과 '광복회'가 그를 친일파로 규정하였다.
전북대학교박물관 이종철 문학박사께서 2024년 4월 24일 새전북신문에 기고한 칼럼 '전주 덕진공원비 이건기(德津公園之碑 移建記)를 대신하여'를 소개한다.
[칼럼] 전주 덕진공원비 이건기(德津公園之碑 移建記)를 대신하여
전주 덕진공원이 자리하는 전북대학교 캠퍼스에는 덕진공원비가 있다. 친일부역자 박기순(朴基順)의 공적을 찬양하는 일제의 잔재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이 기념비가 최근에 새로운 자리로 옮겨졌다. 전북대학교 제1 학생회관이 철거되고 새로운 학생타운이 건립됨에 따라 이전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기념비는 아니지만, 이전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덕진공원비는 1929년 10월 전주 덕진공원 일대에 야구장, 육상경기장, 정구장 및 각 경기장 연결도로와 연못 일주도로를 건설하고, 이러한 치적을 기념하기 위해 1934년 3월에 세운 비(碑)다. 경기장 건설과 연결도로에 소요되는 공사비는 미야지마 요시츠구(宮崎吉造)가 5천 원을, 연못 일주도로 공사비는 박기순이 3천 원을 기부했다. 건설공사는 전라북도 도지사와 관계부서, 전주군수, 전주면장 및 부면장이 주관하였다. 덕진공원비의 글씨와 공사 개요문은 당시 전주읍장이던 후지타니 사쿠지로(藤谷作次郎)가 썼고, 전주읍의 이름으로 건립하였다.
이 기념비는 전북대학교 제1 학생회관 동편에 세워져 있었다. 최근 5.18 최초 희생자로 인정된 이세종 열사의 사망 장소 바로 옆이다. 처음부터 이 자리에 세워졌는지, 아니면 1934년 어딘가에 세워졌던 기념비를 학생회관 동편으로 다시 옮겨 세웠는지는 기록이 없어 분명히 알 수 없다. 다만 오랜 세월 동안 전북대학교의 역사와 함께 해온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얼마 전 비석의 이전 과정에서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명확한 증거가 확인된 것이다.
덕진공원비에 대한 본격적인 이전 협의는 2024년 1월 초에 이루어졌다. 몇몇 이전 장소가 제안되었고, 전북대학교 항공교육실습장 북편 공터로 결정되었다. 기념비의 정체성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덕진공원과의 접근성에 기초한 결과였다. 이건을 위한 해체작업은 1월 30일에 개시되었다. 그런데 해체 과정에서 기념탑의 하부구조가 새롭게 확인되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비문 판석 바로 아래가 기단부일 것으로 추측되어 왔는데, 그 아래로 1미터 정도가 흙으로 파묻혀 존재하고 있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2월 2일까지 해체 및 운반작업이 완료되었다. 이전 장소에서 해체의 역순으로 기념탑을 재조립하는 작업이 실시되었고, 3월 10일에 완공하였다. 탑의 이전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념비의 하부구조가 온전하게 확인된 점이다. 그동안 우리가 보아 왔던 기념비는 약 1미터 가량 흙에 묻혀 있던 모습이었다. 비문이 적힌 판석 아래로 2단의 기단부가 더 있었고, 그 아래에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가설한 방형의 콘크리트층이 존재했다. 그리고 맨 아래층에는 30㎝ 정도 두께의 자갈층(적석부)을 마련하여 하부구조를 안정화시켰다.
둘째, 덕진공원비의 완전한 구조가 밝혀진 점이다. 기념비는 아래부터 적석부-콘크리트층 및 방형 부석(敷石)-비문석+기단부(5단)-대석-비석으로 구성된다. 적석부는 콘크리트층보다 좀 더 넓었거나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콘크리트층은 가로 240㎝, 세로 220㎝, 두께 10㎝.
셋째, 기단부 주변에는 판석을 깔아 경계로 삼았다. 다만 앞쪽은 100㎝, 왼쪽과 오른쪽은 90㎝ 내외, 뒤쪽은 50㎝ 내외로 깔았다. 상대적으로 뒤쪽은 정연한 모습이 아니었다.
넷째, 5단으로 구성된 기단부의 내부는 작은 자갈, 모래, 시멘트를 섞어 충진했음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크고 네모난 돌로 경계를 두르고 시멘트로 고정시킨 후 85㎝×80㎝ 범위의 내부를 시멘트와 자갈, 모래를 섞어 채워 넣었던 것이다.
덕진공원비의 이건이 학술연구 차원이 아닌 건축공사의 일환에서 진행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전주부사(1942년)'에 게재된 완전한 모습의 덕진공원비를 오롯이 확인함으로써 본연의 자리를 찾았다는 점과 산일될 수 있었던 역사적 자료가 활자로 보존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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