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바탕 전주/온고을 구석구석

천주교 순교터 전주 초록바위

by Yeongsik_Im 2024. 8. 4.
반응형

 

 

전주천 서쪽으로 조성되어 있는 전주천서로에는 두로변에 서천교 순교터와 초록바위 순교터 조형물이 각각 세워져 있다.

1서천교 순교터는 성 조윤호 요셉이 처형당한 곳이고, 초록바위 순교터는 15세 두 소년 남영희와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홍봉주의 아들이 처형된 순교터이다. 먼저 소개한 성 조윤호 요셉이 처형당한 서천교순교터는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주 천주교 순교터 서천교 · 곤지산 초록바위

전주한옥마을과 전주비빔밥으로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전주는 세계 가톨릭의 성지이기도 하다. 2014년 8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시복(諡福) 미사에서 복

hyanggyo.tistory.com

 

전주 천주교 순교터 초록바위 조형물

이곳은 1867년 가을 천주교 신자인 15세 두 소년 남영희와 이름이 전해지지 않은 홍봉주의 아들이 처형된 순교터이다. 흥선대원군은 ㅈ비권하여 쇄국정책을 폈는데, 천주교 신자들이 프랑스 세력과 내통한다하여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종교박해인 병인박해를 일으켜 신도 만 여명이 처형되었다. 흥선대원군은 승지(承旨) 남종삼(요한) 성인과 진사(進士) 홍봉주(토마스)를 천주교 괴수로 꼽아 1866년 3월 7일 서울 서소문 밖에서 목을 베어 죽였다. 또한 나라 접대로 남종삼과 홍봉주의 가족을 처벌하였는데, 돈령부동지사를 지낸 남종삼의 아버지 남상교(아우구스티노)는 그해 4월 17일 공주 옥에서 순교하고, 14세된 남명희(명숙)와 홍봉주의 아들은 처형할 수 있는 법적 나이인 15세가 될때까지 전주 옥에 갇혔다. 

 

당시 전주옥은 지금의 한국전통문화전당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전통문화전당 동쪽 입구에  '전주옥 순교지'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옛 전주옥터

전라감사는 남명희를 살려주고자 배교하라고 타일렀으나 "믿음의 근본은 오로지 뜻을 ㅈ어성스럽게 하는데 있습니다. ㅈ천주님은 천지의 대군대부이신데 어찌 배교할 수 있습니까?"하고 대답하였다. 전라감사는 남명희와 홍봉주의 아들이 나이가 차자 1867년 가을 쯤 차마 목을 베어 죽일 수 없어 초록바위에서 전주천 물속으로 떠밀어 죽였다. 순교자 홍소년은 1801년 서울에서 순교 한 진사 홍낙인(루가), 1839년 전주에서 순교한 홍재영 아버지 홍봉주에 이어 4대 째 순교자였고, 남명희의 가문은 3대가 순교하였다.

초록바위 안내석
순교터 조형물과 초록바위

곤지산 끝자락이 전주천과 만나는 곳 초록바위는 싸전다리 남서쪽 남부시장 건너편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 군락에 숨어있다. 전주천 외쪽으로 도로가 나기전 초록바위는 전주천변에 솟은 높은 낭떠러지였다.

1936년 홍수로 제방공사와 이후 도로 확장공사를 하면서 상당부분 깍여서 현재는 완전한 모습을 확인할 수 없지만, 기록에 의하면 초록바위는 깍아지른 절벽으로 그 산세가 갈마음수격(渴馬飮水格)으로 말이 풀밭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초록바위라 명명했다고 한다.

초록바위

전주시는 역사적 의미가 담겨있는 초록바위로 진입할 수 있도록 진입 데크를 설치하고 초록바위 정상에 전망 및 휴게공간을 설치하여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문화 숲길로 조성했다. 이팝나무와 영산홍 등 9종 총 1,600주의 수목 식재와 테마안내판 설치 등을 통해 다양한 볼거리 제공하고 있다.

곤지산 안내비와 초록바위 안내판
곤지산 안내비와 초록바위 안내판
전주마래유산 표지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