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덕진공원 안에는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전봉준 장군상과 조선후기 유학자로서 명성을 전국에 떨쳤던 간재 전우선생 유허비, 한국법조삼성상 그리고 신석정 시비 등 전라북도가 배출한 걸출한 인재들의 비석들이 많이 세워져 있다.
지난 1일 전주에 머무르는 동안 전주덕진공원에 있는 남아 있는 비석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전주시는 2023년 부터 덕진공원 일원에 약 550억 원을 투입, 향후 5년간 호수 수질 개선, 열린 광장 조성, 시설 정비, 야간경관 조성 등을 골자로 총 22개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는데 여기에는 각종 조형물 철거와 공원 내 비석·동상 정비 작업이 중점 진행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모쪼록 전주시민들의 추억이 어린 덕진공원이 테마가 있는 관광지로 탈바꿈되기를 기대해 본다.
본 포스팅에 앞서 올려드린 관련 게시물 '전주 덕진공원에 남아있는 친일 잔재 취향정' 과 '전주 덕진공원비 덕진운동장건설비'도 참고해주시기 바란다.
덕진연못 비석은 지금은 차량 통행이 안되는 덕진연못 산책로에 세워져 있었는데 주변이 정비되고 관광안내소와 해설사의 집이 들어서며 가려져 있다가 덕진공원 입구쪽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덕진연못의 비석에는 덕진연못(Tokjin Pong)이라는 제목으로 그 유래가 새겨져 있다.
본래 건지산 계곡의 물이 고인 연꽃피는 자그마한 늪지였던 덕진지는 건지산과 가련산 사이에 제방을 쌓으면서 커다란 연못으로 변했다. '신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전주의 지세가 북서방향이 허하여 적진지에 제방을 쌓게 되었다고 한다.
덕진제방은 전주땅의 덕과 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온전한 고을을 이루고자 했던 풍수비보적 문화유산이다.
이 제방을 쌓으니 물이 고이면서 저절로 큰 못이 되었고 전주시민들은 옛부터 이곳에서 단오절이 되면 머리를 감고 즐기는 전통이 있었으며 지금도 시민들이 마음편한 곳으로 즐거 찾는 휴식처이다.
이 석탑은 원래 익산군 왕궁면에 있었으나 1922년 전주 풍패지관(전주객사)으로 옮겨졌다가 이후 현재의 위치로 다시 옮겼는데 그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높이는 277cm 내외이며 탑신과 옥개석은 원형 그대로이다. 상륜부에는 노반을 얹었다. 탑신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고, 우주는 돋을새김으로 표현하였다. 전체적인 비례면으로 볼 때 1층 옥개석이 기단 상단석에 비해 커서 윗부분이 무거운 느낌을 준다. 기단부는 상대석만 남아 있고 기단부 하대석은 다른 돌로 만들어져 그 원형을 알 수 없다. 전체적으로 고려시대에 조상된 것으로 보인다.
1. 전주 시민은 유서있는 이 고장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받아 세롭고 찬란한 문화를 이룩하자.
2. 전주 시민은 이웃과 자연을 사랑하여 보다 많은 향토의 복지를 가져오자.
3. 전주 시민은 산업을 진흥하여 윤택있고 품위있는 생활을 하자.
4. 전주 시민은 맡은 바 일터의 신성한 노동을 완수하고 즐거운 휴식을 갖자,
5. 전주 시민은봉건적 보수성을 버리고 항상 젊고 새롭게 살자.
6, 전주 시민은 자유어ㅏ 평화를 수호하여 민주 발전의 선봉적 역군이 되자.
7. 전주 시민은애국애족으로 청사에 빛나는 시민이 되자.
법조 3성은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검찰의 양심' 최대교 전 서울고검장, '사도법관' 김홍섭 판사를 일컫는데 모두 전북 출신이다. 現 이원석 검찰총장이 2023년 5월 전주 '법조 3성(星)' 동상에 참배하기도 했다.
취향정 앞에 세워진 취향정기(醉香亭記) 비석은 취향정을 건립하게 된 과정을 기록해놓은 것으로 1917년 박기순(朴基順)에 의해 세워졌다. 그는 자신의 회갑을 기념하여 지금의 덕진공원에 취향정을 건립하고 취향정과 이를 포함하고 있는 이동면 검암리 1280번지 6414㎡에 전주면사무소에 기부하였다고 비석을 세워 기록해 놓은 것이다.
距今 五百餘年前 이곳에 큰 늪이 이뤄저 蓮塘의 香痕이 지반승뢰와 어울리어 시가묵객들의 아취로운 관성터이었는데 그 뒤 취향정을 세워 풍정을 돋구었으며 해마다 端午節이면 전주 성안 분네를 비롯하여 遠近 各處에서 人波가 밀려와 蒼蒲물로 머리감으며 즐기는 유서깊은 경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환성이 만근에 송림이 고후하고 풍치가 점차로 훼손되어 승지로서의 면모가 가시어 감으로 當市에서는 1974년에 시민의 마음 붙일 안식처요 남이 찾아 줄 관광적 경승지로서의 구실을 할 현대공원을 이룩해보려고 전아하고 향취있는 고전미와 참신하고 산뜻한 현대미와의 절충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바탕으로 기반시설은 시가 담당하였고, 부대시설은 몇몇 기업체의 기증으로 이루어졌으며 각종 수목은 전북신문사의 현수운동에 힘 입어 뜻 있는 사계 ㅇ니사들의 정성어린 선믈로 모아졌습니다.
이렇게 하여 새로 단장한 내 고장의 승지 덕진공원은 시민의 투철한 애향심과 드높은 문화적 긍지로써 앞으로 더욱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지고 길이 길이 정성어린 사랑이 깃들이리라고 믿습니다.
1974년 6월 24일 단오절 시미느이날에 전주시장 원병의
동학농민군 총관령 김개남장군은 전주 초록바위에서 참형을 당했으나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외면 동곡리에는 그의 허묘가 있다. 시신이 없는 무덤 앞에는 장군상·상석·망주석·장등석 등의 석물과 함께 추모비와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백여년 전 이땅의 민중들이 들불처럼 일어났던 동학농민전쟁은 봉건체제의 모순과 제국주의의 침탈로부터 나라를 구하려는 혁명운동이었으니 이로써 민족자존의 깃발이 우뚝 . 세워졌다. 우리는 동학농민전쟁의 자랑스런 역사와 그 한가운데서 민중해방의 일념으로 타올랐던 김개남장군과 아울러 역사앞에 이름없이 쓰러져 간 동학농민의 뜻을 오늘에 되살려 그들의 뜻이 살아 쉼쉬는 이땅에 동학농민전쟁정신을 길이 길이 빛내고자 강희남이 짓고 신영록이 써 역사의 돌을 세운다.
1958년 덕진공원내에 건립된 최영희장군공덕비는 취향정기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것이다.최영희장군은 1922년생으로 해방 이후 국군 창설에 참여하였고 국군 제1사단장과 제8사단장을 역임하였다. 제8사단장으로 삼남지구사령관을 겸하며 전주에 주둔하면서 빨치산을 토벌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당시 제8사단은 덕진공원에 주둔하였다.
이 공덕비의 외관은 상단에 뾰족한 사각형 뿔 형태를 띠고 있는데 사각형 뿔 모양은 전사자를 추모하는 일본식 충혼비를 상장하는 특징이다. 기단부와 상단을 비롯한 공덕비의 외형에서 일제의 식민 잔재를 확인 가능하다.
덕진공원에는 전주 국회의원 김용진의 공적비도 있다. 김용진은 제7대 국회의원으로서 전주공업단지 조성과 전북대 의대 설립, 전주교도소 이전 등 전주시의 현대화에 많은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전주 덕진공원에 있는 많은 비석과 동상, 기념물들은 전주시와 전라북도, 나아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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