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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향교와 서원/경상남도

창녕 관산서당 서원철폐령 실체가 확인된 첫 관산서원

by Yeongsik_Im 2024.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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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포항에서 밀양에 도착 영남제일루인 영남루, 밀양관아, 밀양읍성 등을 돌아보고 국도를 따라 천왕재를 넘어 창녕으로 가는 길 고암면에 있는 창녕관산서당(昌寧冠山書堂)과 구니서당(求尼書堂)에 들렸습니다.

 

관산서당과 구니서당은 서원이었으나 대원군의 서원펄폐쳥으로 훼철되었다가 이후에는 서당으로 명맥을 이어왔습니다. 서당( 書堂)은 마을 단위로 설립한 초등단계의 사설교육기관입니다.  서원과 다를바 없는 규모로 강학공간을 앞에두고 그 뒤에 사당을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창녕관산서당은 광해군 12년(1720)에 조선 중기 대학자인 정구(鄭逑, 1543~1620)를 기리기 위해 세원진 서원에서 비롯됩니다. 관산서원은 숙종 37년(1711) 청녕 지역에서 유일하게 사액을 받았으나 고종 8년(1871)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고 현재의 서당은 고종 36년(1899) 지역 유림들이 옛 서원터에 세원 것입니다. 

 

흥선대원군은 서원 철폐령을 단행하며 1868년과 1871년에 전국 서원 1,700여곳 중 47개소만 남기고 모든 서원을 철폐하고 사당에 모신 위패(位牌)인 신주(神主)를 묻으라는 '철원매주'(撤院埋主)를 명했었는데 2009년에 그 첫 실체가 관산서원 사당터에서 처음으로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관산서원 사당터 복원을 위한 터파기 공사를 위해 긴급 학술조사를 실시한 결과 묻혀있던 매주(埋主)시설을 확인한 것입니다. 서원을 철폐하고 신주를 묻은 역사적 사실이 유물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매주 시설은 옹관처럼 옹기를 맞붙이고 그 둘레를 기와로 감싼 형태의 이른바 '신주단지'로, 그 안에는 영남 5현(嶺南五賢ㆍ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 정구) 중 한 사람인 정구(鄭逑ㆍ1543~1620)의 위패가 봉안돼 있었다고 합니다. 

사진 우측은 관산서원 사당터에서 대원군 서원 철폐령의 실체를 최초로 확인한 문화재청의 당시 보도자료 사진입니다. 사진(좌측)은 창녕군청 누리집의 관산서당 소개 사진인데 2009년에 복원된 사당은 보이지 않습니다. 관산서원의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집으로 옛 사당터에 복원되었습니다. 

관산서당 외삼문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인 관산서당은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박공지붕 형식으로 정면 4칸, 측면 1.5칸 규모로 지어졌으며 앞쪽의 반칸은 툇간으로 만들었고,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우측방의 전면 툇마루는 한단 올려 대청과 높이를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방의 창호는 모두 세살문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좌측방에는 두짝, 우측방에는 외짝의 세살문을 달았고 대청의 뒷벽에는 판장문을 달아 고급스럽지 않지만 소박한 형태이다. 3량 가구 형식으로 중앙부에 대들보를 걸고 전면의 퇴칸에는 퇴보를 걸어 연결하였으며 큰 장식은 보이지 않습니다.

 

건립기록을 찾을 수 없으나 1900년 전후에 건립된 것으로 판단되며, 퇴칸의 사용이나 간결한 가구기법 및 장식적 기법 등 조선후기 건축양식과 기법을 볼 수 있는 건물로 학술적 가치가 있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하고 무엇보다 창녕지역에 유일한 사액서원으로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서당입니다.

관산서당과 사당
사당

관산서당 앞 마을 앞에서는 양파재배가 한창입니다. 창녕은 양파 시배지(始培地 처음으로 식물을 심어 가꾼 곳)이기도 합니다.

 

양파는 1908년 원예모범장에서 시험 재배되었다는 문헌기록이 있는데 이듬해인 1909년, 창녕 대지면 아석가(我石家)의 성찬영 선생이 처음으로 양파재배에 성공했고,  이후 손자인 우석(愚石) 성재경(成在慶) 선생은 한국전쟁 직후 농가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보리를 대체하는 환금작물(換金作物)로서 양파를 적극 보급하였다고 합니다.

 

1963년, 성재경 선생이 김성수, 하재호 선생 등과 함께 창립한 농민단체 경화회(耕和會)는 이후 양파 재배를 확대하는 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1969년에는 6천여 농가가 양파를 재배하게 되었으며, 그 면적은 빠르게 늘어 1천여 헥타르에 이르게 되었고 이후 창녕은 전국 최고의 양파 주산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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