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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방방곡곡/전북특별자치도233

군산의 보물 발산리 5층석탑 · 발산리 석등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발산초등학교에 도착하면 문화재 주차장은 뒷편에 있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이유는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보물 제276호)와 군산 발산리 석등(보물 제234호)를 비롯한 여러 유물들은 학교 뒤편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학교로 진입하지 마시고 우회전 해서 약 800미터 정도만 가면 주차장과 화장실 등이 조성되어 있다​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조금만 가면 많은 석조 유물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인1940년대 시마타니 야소야라는 일본인 농장주가 자기 정원을 조성하기 위해 석등(보물 234호)과 오층석탑(보물 276호) 등을 완주군 봉림사터에서 옮긴 것 이다. 몇 년이 지난 후 해방이 되면서 농장주는 떠나고 농장에는 발산초등학교가 들어섰다. ​일제에 의해 문화재 .. 2024. 8. 19.
이종훈 가옥 - 군산시 개정면 운회리 와룡마을 이종훈 가옥 李種爋 家屋 군산시 향토문화유산 제15호이종훈 가옥은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운회리 434-1 전의 이씨 집성촌인 와룡(臥龍)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와룡 마을은 군산 시내에서 동쪽으로 개정면을 지나 익산으로 난 국도 26호선인 번영로을 타고 가다 최호 장군 교차로에서 북서쪽으로 국도 29호선 금강로을 따라가면 동쪽으로 넓은 들판 가운데 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1880년대 건립된 전면 5칸, 측면 2칸의 목조 기와 건물로, 1층 기단을 두고 자연석의 초석 위에 네모 기둥으로 세워져 있다. 본래 ㅁ자 형태로 네 채의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ㅡ자형 안채만이 남아있다. 내부는 전면에 툇마루를 두고 좌측으로부터 부엌과 안방, 건넌방 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안방과 건넌방 모두 여닫이 굽널띠살문을.. 2024. 8. 18.
김천석지단 - 김제시 황산면 용마리 김천석지단 金千石之壇 Memorial Stone Gim Cheon-seok 김제시 황산면사무소에서 지방도 714호선을 따라 1.6km정도 가면 용마리로 가는 도로가 왼쪽으로 나있다. 여기서 400m쯤 가더 보면 도로 왼쪽에 용마리 농원마을과 고잔마을 사이 논 가운데 있는 총각산에 비각이 있는데 故金海金公千石之壇 (고김해김공천석지단)이다.김천석(金千石)은 순조 때 지금의 김제시 백학동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가계에 대해서 밝혀진 기록은 없다. 그는 찰방(察房) 고씨의 머슴으로 있으면서 근검절약하여 재산을 모아 이웃들이 가뭄이나 재난을 당할 때마다 식량을 고루 나누어 주는 등 인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결혼을 하지 않아 자손이 없던 김천석은 김제시 황산면 용마리 고잔마을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죽기 직전 자신의 .. 2024. 8. 17.
전주 차이나거리 다가동 구 중국인 포목상점 전주부성 서문지 전주시는 1996년 물의 도시 중국 쑤저우(蘇州)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후 화교소학교와 중국인 포목상점에 가가운 다가동 일대 250m 구간을 차이나 거리로 조성했다. 2002년에는 소주시(蘇州市)  인민정부에서 설치한 ' 蘇州街(소주가)' 라는 화려한 누각도 세워졌다. 근대화 유입 시기 비단상인, 요리점, 벽돌공 등 다양한 직업군을 형성한 중국인 상인들이 서문 밖에 마을을 형성하여 100여 호가 모여 살았다고 한다. 당시 중국인 포목상점이었던 건물은 전동성당을 쌓았던 중국인들이 붉은 벽돌로 지은 것으로 국가등록문화재 제174호로 지정되었다. 인근에는 국가등록문화재 제173호 '중앙동 구 빅디옥'이 위치하고 있다.  전주 다가동 구 중국인 포목상점은 1928년 무렵에 다가동 주변의 작은 점포를 통합하여 지은.. 2024. 8. 17.
전북특별자치도 전북특별자치도청 전북도청은 2004년 7월 전주시 중앙동 시대를 마감하고 효자동 서부신시가지로 이전했다.1996년부터 이전사업이 추진돼 2001년 10월 착공했으며, 전주시 효자동 3가 11번지 일대의 터 3만1275평에 지상 18층 지하 2층 연면적 2만5779평 규모로 사업비 1759억원을 들여 준공했다. ​구 전라북도청 본관동은 1921년 지었다가 화재로 소실돼 56년 다시 신축한 구청사는 조선시대 전라도와 제주도를 관할하던 전라감영이 있었던 곳으로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집강소가 설치되었던 곳이다.전라북도는 청사 이전과 함께 전라감영 복원사업을 추진하여 2015년 구도청사 철거를 시작으로 감영 복원이 시작되었고, 2017년 11월 1일 감영 복원 착공 후 2020년 10월에 1단계 사업을 완료하고 문을 열었다.20.. 2024. 8. 16.
완주 평화의 소녀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해 완주군민의 의지를 모은 ‘완주 평화의 소녀상’은 2020년 8월 14일 삼례 책마을 앞 도로변에 제막했다.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김서경·김운성 작가에게  제작했다.완주 평화의 소녀상을 통해 일제 식민지배의 폭력성과 반인권성을 기억하고 가슴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자는 완주 군민들의 의지가 대대적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완주 평화의 소녀상 건립 군민추진위원회는 2020년 9월 완주 평화의 소녀상을완주군에 기증했다. 현재가지 블로그에 소개한 평화의 소녀상은 군산 평화의 소녀상, 익산 평화의 소녀상, 오수 의견고울 평화의 소녀상, 금산 평화의 소녀상, 전주 한옥마을 평화의 소녀상, 등이 있다. 2024. 8. 13.
삼례 비비정예술열차 만경강 철교가 지나는 언덕 위에는 비비정이 있고 국가등록 문화재인 옛 만경강 철교 위에는 식당과 카페 등으로 구성된 비비정 예술열차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8월 11일 비비정과 만경강 철교를 돌아보며 비비정예술열차를  잠시 돌아 보았습니다.  옛 만경강철교 국가등록문화재비비정과 비비정예술열차를 잠시 둘러본 후 만경강을 건너 국가등록문화재인 옛 만경강철교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목안쉼터로 내려왔다. 푸른 만경강이 보이는 만경강철교 아래 목안hyanggyo.tistory.com비비정에술열차는 옛 만경강 철교에 4량의 새마을호 폐 열차를 구입해 리모델링하여 비비정예술열차로 개장했는데. 현재 1호차는 레스토랑, 1호차와 2호차 사이에는 공로비가 있으며, 2량은 아트숍, 3호차와 4호차는 카페로 구성되어 있습.. 2024. 8. 13.
옛 만경강철교 국가등록문화재 비비정과 비비정예술열차를 잠시 둘러본 후 만경강을 건너 국가등록문화재인 옛 만경강철교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목안쉼터로 내려왔다. 푸른 만경강이 보이는 만경강철교 아래 목안쉼터는 목안 한쌍이 사이좋게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쉼터이다. 목안(木雁)이란 전통 혼례 때 쓰는 나무로 각아 만든 기러기를 말하낟. 엣날에는 아들을 둔 집에서 기러기를 기르다가 아들이 장가가는 날 기럭아범이 등에 지고 앞장섰다고 한다. 이것이 번거로워 나중에는 족가하여 채색한 나무 기러기로 대용됐다.  전북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 앞 100년도 넘은 유구한 역사를 품고 2011년 10월 그 사명을 다한  476m의 만경강 철교는 만경강을 가로 질러 그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서 있다.만경강 철교는 스틸거더 형식의 찰도 교량이다. 교.. 2024. 8. 12.
완주 호산서원 - 완주군 삼례읍 호산서원(湖山書院) 은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 137에 위치하고 있다.건립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안내하고 있으나 디지털완주문화대전에는 1805년(순조 5)에 지역 유림의 공의(公議)를 통해 정몽주, 송시열, 김수항의 절의와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송시열이 거주하였던 비비정 곁에 호산서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봉안하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창건한 이후 1868년(고종 5년) 홍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모두 헐렸다. 일제강점기 때 재건하였으나, 6.25전쟁 당시 서원 경내에 있던 신앙재와 강당이 불에 타 없어졌다. 그 뒤 1958년 이 지방유지 한증수와 유림들의 노력에 의해 신앙재와 강당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 경내에는 삼문1동, 전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인 사당, 강당1동 등이 있.. 2024. 8. 12.
동학농민혁명유적지 - 정읍 전봉준 단소 · 전봉준 고택 동학농민군 대장 전봉준 단소 壇所 정읍시 이평면 창동리 산10-3에 위치하고 있는 전봉준단소(全琫準壇所)는 조소마을에 있는 전봉준선생고택에서 약 500m 떨어진 소나무 숲에 있다. 전봉준 장군은 1895년 3월 서울에서 처형되어 끝내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유해가 없는 허묘(虛墓) 이다. 단소는 주검이 없는 허묘를 말한다.전봉준 단소는 1893년 11월 ‘사발통문 거사계획’ 은 물론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 된 1894년 1월 10일(양력 2. 25) ‘고부봉기’ 와 동학농민혁명을 주도한 동학농민군 대장 전봉준을 기리기 위해서 ‘동학농민혁명 60주년’ 이 되는 1954년 11월 25일, 천안전씨 문중에서 설단하였다.갑오민주창의통수천안전공봉준지단(甲午民主借義統帥天安全公琫準之壇)의 단비 이름은 당대 석학이자 사학.. 2024. 8. 10.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 · 기념관 · 캠핑장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은 2022년 5월 11일(동학농민혁명기념일) 에 1894년 5월 11일 동학농민군이 전라감영군을 맞아 크게 승리한 정읍 황토현전적(사적 제295호) 일대에 조성되어 개원하였습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서는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범국민적으로 확산하기 위해 상설전시 및 각종 교육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은 사발통문 광장, 방문자센터 511, 캠핑장, 연수동, 기억의 들판, 동학농민혁명의 길, 울림의 기둥, 농민의 벽, 박물관,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카페테리아1894 등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004년 개관한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은 상설전시관, 어린이전시관, 기획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특수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전북특별자치도로부터 위탁받.. 2024. 8. 10.
연꽃 향기 그윽한 전주덕진공원 덕진채련의 절경 전주덕진공원은 전주사람들이라면 가족 또는 친구나 연인들과 한두번 정도 안 가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세대별 추억이 공존하는 친근한 곳이었다. 특히 덕진공원의 명소였던 출렁다리로 불리웠던 현수교는 40년만에 석교로 재가설되었다. 또한철거한 연화교와 연화정은 전주의 정체성을 담아 전통 석교 형태의 연화교와 전통정원을 갖춘 전통한옥 형태의 연화정으로 재건축했다.덕진공원의 정문인 연지문은 1974년 전주청년회의소에서 건립한 것으로 편액의 蓮池門(연지문) 글씨는 서예가 강암 송성용 선생의 작품이다.전주시는 2023년 11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전통담장 조성, 호수준설 연꽃군락지 조성, 수변쉼터 재설치, 연지교 재가설 및 신설, 열린광장 조성, 야간경관조성 사업 등을 통해 덕진공원을 머물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2024. 8. 8.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 말목장터와 감나무 말목장은 부안과 태인과 정읍으로 가는 길이 만나는 삼거리에 형성된 시장으로 배들평야의 농산물과 부안 줄포의 수산물이 거래되던 큰 장(場)이었다.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 된 고부봉기 (1894. 1. 10.) 당시, 고부관아로 진출하기 전에 수 천 명의 배들평 농민과 동학교인들이 모인 곳으로 '사발통문 거사계획’ 을 실현한 동학농민군의 첫 집결지이다.수천의 군중이 이곳에 모였을 때, 동학농민군 지도자 전봉준은 감나무 아래에 서서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과 수탈을 설명하고 이에 맞서 봉기할 것을 역설하였다고 한다. 이에 수천 군중이 호응하여 고부관아를 점령하니, 바로 우리 민족사에 길이 빛나는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었다.  말목장터는 고부봉기와 무장기포, 그리고 백산대회로 이어지는 동학혁명의 출발지가 되었다. .. 2024. 8. 8.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 만석보혁파선정비 · 동학농민혁명 최초 봉기 상징조형물 만석보 쉼터에서 만석보유지에 들린 후 말목장터로 가는 길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예동마을에 있는 '만석보 혁파 선장비' 에 들렸다. 이곳에는 만석정과 동학농민혁명 최초 봉기 상징조형물이 세워져 있다.만석보 혁파 선정비1892년 5월 고부군수로 부임한 조병갑은 이미 보(洑 • 예동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민을 강제로 동원,새로운 보를 축조하였다. 그리고 수세 (水稅)면제의 약속을 어기고 더욱 수탈하며 탐학을 저질렀다. 이에 ‘배들평야’ 농민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봉기하니, 바로 동학농민혁명의 발단이 되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보의 일부만 동학농민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1898년(戊戌) 고부군수로 부임한 안길수(安吉壽)가 나머지를 철거하였다. 이는 만석보로 상징되는 조병갑의 수탈과 학정에 대한 재발 방.. 2024. 8. 8.
동학농민혁명의 발단 만석보 萬石洑地 만석보 쉼터에서 내려와 약 700여미터 거리에 있는 만석보가 있었던 만석보지(萬石洑地)로 간다. 만석대교를 건너면 우측으로 동학농민혁명유적지 만석보터 이정표와 만석보유지 표지석이 나온다.봏는 농사에 사용하기 위해 냇가에 둑을 쌓아 물을 가두어두던 곳이다. 원래 정읍천 상류에는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예동보라는 민보가 있었다. 그런데 조선 고종 30년(1893)에 고부 군수로 부임한 조병갑이 민보 아래에 만석보를 쌓으며 농민들을 강제로 일하계 하였고, 주인의 허락도 없이 나무를 베어 사용하였다, 또한 보를 쌓은 뒤에는 수세(봇물을 이용하는 대가로 지급하는 돈이나 곡식) 명목으로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였다.결국 1894년 조병갑의 포악한 정치와 과중한 세금으로 힘들어하던 농민들은 만석보를 혈었다. 이는 동학.. 2024.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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